[Dispatch=정태윤기자] 영화 '실낙원'은 연상호 감독의 어머니의 노트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연 감독은 매일 글 쓰느라 힘들지 않냐는 어머니의 걱정에 "한글만 알면 누구나 쓸 수 있다"며 안심을 시켰다.
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연습장에 이야기 3편을 써 내려갔다. 그중 한 편이 영화가 됐다. 악한 아들, 그리고 그런 아들을 생각하는 엄마의 기묘한 마음. 이는 '실낙원'의 출발점이 됐다.
영화 '실낙원' 측이 12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언론배급시사회 및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연상호 감독, 김현주, 배현성이 참석했다.
'실낙원'은 심리 스릴러다. 9년 전 캠핑스쿨 버스 실종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엄마 류소영(김현주 분)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 류선우(배현성 분)가 살아 돌아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실낙원'은 개봉 전부터 토론토국제영화제와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공식 초청되며 국내외 평단의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연상호는 "영화제에서 외신 기자분들이 깊은 질문들을 해주셔서 깊은 감동을 느꼈다. 부국제에선 GV에서 관객들이 좋은 이야기들을 해주셔서 역시 우리의 주무대는 사우스 코리아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웃었다.
이 이야기는 연상호 감독의 어머니의 노트에서 출발했다. 그는 "어머니가 매일 글 쓰느라 힘들지 않냐고 하셔서 안심시켜 드리려고 '한글만 알면 누구나 쓸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고 떠올렸다.
이어 "어머니가 그걸 계기로 연습장에 3편 정도의 이야기를 쓰셨더라. 그 중 한편이었다"며 "악한 아들과 아들을 생각하는 엄마의 심리가 기묘했다. 그 마음을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본을 작업했다"고 말했다.
아들로서, 또 아이들의 부모로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연상호는 "초등학생 딸과 5살 아들이 있다. 애들을 키워보니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으로 (육아를) 하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제가 그 다짐을 한 것처럼 그 마음을 우선으로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류소영도 그것에 몰입되어 있는 사람이 아닐까라는 추정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밀턴의 대서사시 '실낙원'에 맞춰 구상했다. 뱀의 몸을 빌린 사탄의 유혹에 빠지는 이브, 그리고 낙원에서 쫓겨나는 인간.
연 감독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동시에, 영원히 낙원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 그 테마에 맞춰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AI 시대에 인간다움이란 사색이 있는 세상에 사는 거라 생각한다. 사색하기 때문에 괴로움도 기쁨도 생긴다. 그 안에 풀리지 않는 사색의 공간인 심연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만들려 했다"고 부연했다.
지난해 선보인 '얼굴'에 이은 저예산 프로젝트 중 하나다. 14회차 만에 촬영을 끝냈다. 촬영 기간도 한 달여.
연상호 감독은 "지난해 찍은 '얼굴'이 개인적인 작업이라 생각했는데, 좋은 반응을 얻었다. 덕분에 '실낙원'을 찍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작은 작업인 만큼 동료 배우들의 도움도 컸다. 먼저 신현빈이 영화의 초반 사건을 전개하는 내레이션을 담당했다. 구교환 배우는 카메오로 깜짝 등장한다.
연 감독은 "신현빈이 '군체' 후시 녹음을 하러 왔을 때 슬쩍 부탁했다"며 "구교환 배우는 본인이 옷을 갖춰 입고 엑스트라로 나섰다. 심지어 쫑파티까지 왔다"고 털어놨다.
그는 "친한 배우들이 상업적 목적이 아닌 알음알음 도와줘서 동아리 활동처럼 만든 영화"라며 "이런 식의 작업이 재미있는 것 같다. 1년에 한 번씩 이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다"고 바랐다.
'실낙원'은 류소영의 심리를 따라가는 영화다. 여기에 9년 만에 나타난 류선우는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며 극에 균열을 내야 한다.
김현주의 열연과 배현성의 혼신으로 '실낙원'을 완성했다. 김현주는 "촬영이 길었다면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라며 "오히려 짧아서 집중해서 찍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기는 크게 계산하지 않았다. 류소영에 대한 키워드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자연스럽게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김현주는 "시나리오를 보면, 그 감정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다만, 진정성 있게 감정적인 연기를 해야 했다"고 연기 고민을 털어놨다.
이어 "선우가 떠난 후 소영은 이미 죽은 사람처럼 살았다고 생각했다"며 "어느 날 찾아온 아들을 낯선 남자의 등장 정도로 느낀 것 같다"고 전했다.
배현성은 "대사가 많지 않지만, 눈빛과 행동으로 표현해야 했다. 행동과 걸음걸이를 느리게 하는 등 쎄한 기운과 차가운 공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본편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실낙원 - 유니버스'도 공개했다. 단편 필름 시리즈로, 류소영에게 죽은 아들을 AI로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준 기술을 각기 다른 인물들에게 대입한 것이다.
연상호 감독은 "영화의 스핀오프나 앤솔러지 형태의 단편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며 "마케팅을 위해 단편을 만든다는 건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이제는 생성형 AI의 기술 수준이 되어서 작업해 봤다"고 설명했다.
AI가 영화에 미칠 영향도 물었다. 그는 "산업에 계신 모든 분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라면서도 "AI가 예술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은, 결국 보편성이 독창성이 될 수 있냐는 질문 같다"고 생각을 전했다.
이어 "마르셀 뒤샹은 공장에서 찍어낸 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했다. 기성품, 이른바 '레디메이드'도 예술이 될 수 있냐는 논쟁을 불렀다. 생성형 AI도 독창성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배현성은 "첫 주연 영화라 떨리고 긴장이 된다.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김현주 역시 "시간은 짧지만 농도는 짙은 영화"라며 관람을 독려했다.
연상호는 "영화라는 매체의 궁극적 엔터테인먼트는 옆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실낙원' 유니버스도 그 연장이 될 수 있게 애썼다.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했다.
<사진=이승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