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 | 부산=정태윤기자] "대부분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모르고 왜곡된 이야기를 합니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까. 그게 굉장히 궁금했어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다. 나홍진 감독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내린 결론이다. 전부 거짓이라 여길 수도 없다.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거짓이다.
그는 그 둘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질문이 시나리오의 핵심이 됐다.
"밀실에서 5분 동안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해 봅시다. 5분 뒤에 복기하면 우리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애초에 진짜라는 건 없는 거죠."
그때부터 진실을 찾는 일은 그의 영화에서 중요한 질문이 됐다.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무엇이 사실인지, 인물들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쉽게 판단할 수 없게 만드는 것.
나홍진 감독은 그 혼란 자체를 이야기의 동력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명확한 답 대신 의심이 남는다. 인물이 한 명씩 늘어날수록 이야기는 거미줄처럼 복잡해진다.
그 복잡함을 정리하기보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심지어 그 거미줄 안에 관객까지 끌어들이기로 했다.
그는 "정리하려 들지 않고 쉽게 만들려 하지 않고, 관객과 함께 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자고 결심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나홍진 감독이 8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에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램 중 하나인 마스터 클래스에 참석했다.
'마스터 클래스'는 세계적인 영화인들의 영화 철학과 창작 경험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강연 프로그램이다. 오전부터 강연장 안은 관객들로 가득 찼다.
나홍진은 이날 모더레이터 없이 유년시절부터 자신의 창작 과정을 차례대로 털어놨다. 나홍진 감독은 이야기를 만들 때 가장 먼저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감각에서 출발한다. 그가 작품을 시작하기 위해 반드시 확인하는 것이 있다. 바로 불길함이다.
그는 "불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웬만해선 작품을 시작하지 않는다. 단순한 공포가 아니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을 앞두고 느끼는 막연한 불안"이라고 설명했다.
그 감각이 생기면, 비로소 이야기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호프'도 그렇게 시작됐다. 2017년 무렵부터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전후에는 그 불안이 더욱 강해졌다. 나홍진 감독은 그때 느꼈던 불길함을 붙잡고 이야기로 옮겼다.
나홍진 감독은 "불안과 불길함이 있고, 인간의 복잡함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미스터리가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사람을 찾는다. 자신이 모르는 세계로 들어간다.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때로는 몇 달씩 한 공간에 머물며 사람을 관찰한다.
'추격자'는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경찰관의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황해'를 만들 때는 가리봉동을 직접 찾았고, 연변까지 건너가 사람들을 만났다. '곡성'에서는 무속인 가족과 가까워졌고, 산속 암자에서 몇 달을 보내며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그에게 취재는 자료를 모으는 일이 아니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는 "사람이라는 게 너무 복잡하고 입체적이지 않나. 한 사람을 단순하게 규정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만난 사람의 이름이나 말투, 행동이 캐릭터 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그렇게 모은 조각들을 하나씩 이야기 안에 배치한다.
나홍진은 "어두운 동굴에 들어가는 것 같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사람을 하나 만들면 동굴이 조금 좁아지고, 또 하나를 만들면 더 좁아진다. 그렇게 점점 압박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갈림길도 많아진다. 어느 순간에는 되돌아갈 수 없을 만큼 좁고 어두운 곳에 도착한다. 그가 원하는 건 바로 그 지점이다.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갈 방법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상황에서 영화는 빛을 보여준 적 없지만, 빛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믿음을 줍니다. 다만 그 빛이 보이는 것이 아닌, 믿음 상에서만 느껴지게 하죠."
시나리오가 완성됐다면, 그 다음은 모드 자체를 변환한다. 나홍진은 "시나리오를 쓰는 기간, 영화를 만드는 기간, 대중에게 공개되는 기간. 이 3개의 시기에는 전혀 다른 모드로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만드는 그 기간에 비로소 영화 감독의 일을 하게 되는데, 저는 감독이라는 호칭의 의미가 뭘까에 대한 고민을 오래했다"고 털어놨다.
그의 결론은 모든 요소를 감독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저는 창작자가 아니라 시나리오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장면화하는 다른 사람이 된다. 기술적인 측면이 중요한 사람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때 어떻게 하면 이 요소들을 움직여서 어떤 변화를 유도해 이 프레임 하나를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복잡한 이야기를 어떻게 화면으로 옮길까. 그는 의외로 공간을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공간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 공간에서 내가 놀 수 있어야 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공간을 찾는다. 배우를 캐스팅할 때도 마찬가지. 이 배우가 그 공간에 들어갔을 때 어떤 모습이 나오는지, 가까이 찍어야 하는지 멀리서 찍어야 하는지까지 생각한다.
그는 "촬영 전, 스태프나 장비들이 들어오기 전에 배우들에게 공간을 먼저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공간을 느끼라고 한다"고 말했다.
준비를 많이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계획을 내려놓기도 한다. 특히 '곡성'이 그랬다. 그는 촬영 전 스토리보드를 공유하지 않고, 심지어 자신도 보지 않았다.
그는 "매일 아침 그날 찍을 것을 결정했다. 공간에 들어가 배우와 빛을 보고, 촬영을 하는 중에도 그날 좋은 것을 발견하면 카메라를 돌렸다"고 떠올렸다.
후반작업은 여전히 어렵다. 노하우도 없다. 그는 "스태프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시나리오를 쓰고 프리프로덕션을 하는 이유는 포스트프로더션을 위해서'라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호프' 후반 작업을 3년 넘게 진행했다. 그는 "수년간 고민한 것도 다 그 끝을 향해 있다"며 "시간 확보에도 공을 들인다. 시간에 쫓기면 사냥할 기회를 놓친 채 사냥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영화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 전반적인 이야기를 했다. 이 또한 호불호가 있을 수 있을 것"이라며 "영화제에서 즐거운 시간 잘 보내시길 바란다"고 인사했다.
<사진=송효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