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 | 부산=유하늘기자] "저는 감독이기 이전에,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입니다. 제가 보고 싶은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고 싶습니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
알폰소 쿠아론은 장르와 공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독이다. '러브 앤드 히스토리', '소공녀', '위대한 유산',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칠드런 오브 맨' 까지. 폭넓은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도 성과를 거뒀다. '이 투 마마'(2001)로 베니스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그래비티'(2013)와 '로마'(2018)로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차례 거머쥐었다. 특히 '로마'는 베니스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까지 품에 안았다.
그의 아들이자 영화감독인 호나스 쿠아론 역시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아버지와 '그래비티'의 각본을 공동 집필했다. 이번에는 신작 '가바초 챔피언'을 들고 부산 관객들을 만났다.
알폰소 쿠아론과 호나스 쿠아론이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8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영화를 향한 애정과 서로 다른 연출 세계를 이야기했다.
◆ 아버지와 아들 | 서로 다른 영화의 언어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부자지간을 넘어선다.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알폰소는 아들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는 것을 처음부터 반기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호나스의 선택은 확고했다. 호나스는 "아버지가 영화를 열정적으로 사랑하셨다. 그 애정을 자연스럽게 공유해주셨다"며 "영화는 어릴 적부터 늘 제 삶 속에 존재했다"고 강조했다.
알폰소는 아들의 독자적인 시선을 높이 평가했다. "저와는 다른, 고유한 영화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었다"며 "명확한 서사 안에 사회적인 주제를 담으려 한다. 관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이라고 설명했다.
호나스의 신작 '가바초 챔피언'을 언급했다. 알폰소는 "시각적 스토리텔링을 시도하면서도, 작품의 주제를 놓치지 않는다"며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관객과 연결되려 한다"고 평가했다.
아버지는 호나스에게 가장 가까운 영화 선생님이었다. 호나스는 "어릴 때 고전, 스릴러, 액션 등 다양한 작품을 접했다"며 "아버지의 영화에 대한 지식과 애정 역시 제 자양분이 됐다"고 떠올렸다.
◆ '그래비티' | 부자의 첫 협업
두 사람은 '그래비티'로 창작의 접점을 찾았다. 우주 공간에 홀로 남겨진 인물의 생존을 그린 작품이다. 알폰소 쿠아론이 연출을 맡고, 호나스 쿠아론이 공동 각본가로 참여했다.
호나스는 "아버지가 제 시나리오를 좋게 봐주셨다"며 "브레인스토밍부터 각 단계까지 유기적으로 진행됐다. 많은 것을 배운 작업이었다"고 돌아봤다.
알폰소와 호나스는 작업 과정에서 부자라는 관계를 내려놨다. 알폰소는 "영화를 만들 때는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감독과 작가로 만났다"며 "점심시간에는 잠시 부자지간이 됐다"고 웃었다.
호나스는 생존 서사에 매료되는 이유에 대해 "극한 환경에서는 인물의 심리와 선택이 투명하게 드러난다"며 "우주에 홀로 남겨진 여성이 자신의 깊은 슬픔을 마주한다. 그것을 이겨내야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고 짚었다.
'그래비티'는 제86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비롯해 7개 부문을 수상했다.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이 영화적 성취로 이어졌다. 각자의 연출 세계를 넓혀가는 계기가 됐다.
◆ '가바초 챔피언' | 이민자의 얼굴
호나스 쿠아론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신작 '가바초 챔피언'을 선보였다. 이민자의 삶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는 이민 문제를 정치적 구호가 아닌, 한 인간의 얼굴과 삶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호나스는 "이민이 하나의 개념이나 숫자로만 이야기되는 경우가 많다"며 "그 안에 실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고난과 폭력 속에서도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단순히 고통을 재현하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역경 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과 그를 둘러싼 공동체에 주목했다. 그는 "낙인 찍히는 상황에서도 함께 꿈을 이루려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알폰소는 "이민자의 이야기에는 비극과 연약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즐거움을 만들고, 상상하고, 꿈꾸며 공동체를 이루려고 한다"며 "'가바초 챔피언'이 그런 모습을 담아냈다"고 짚었다.
호나스는 "'괴물', '기생충', '호프', '어쩔수가없다' 같은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며 "사회적인 주제를 장르 안에 녹여내고, 유머까지 담아냈다. 배울 점이 많다"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 관객 | "영화는, 함께 경험하는 것"
두 감독이 공통으로 강조한 것은 관객이었다. 서로 다른 영화적 언어를 지녔지만, 영화가 관객에게 닿아야 한다는 생각은 같았다.
알폰소는 "저는 감독이기 전에,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이다. 각본을 쓸 때도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떠올린다"며 "어떤 이야기를 스크린에서 보고 싶은지, 제가 그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인지 고민한다"고 털어놨다.
호나스는 장르영화의 힘을 이야기했다. 그는 "스릴러를 볼 때 인물의 긴장을 함께 경험한다. 코미디를 볼 때는 함께 웃는다"며 "극장에서는 관객들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 산업의 변화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알폰소는 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플랫폼의 등장이 영화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극장에서 영화를 함께 보는 경험의 중요성은 여전하다고 강조했다.
차기작에 대한 소식도 전했다. 알폰소는 "새로운 각본을 쓰고 있다. 호러 장르의 이야기"라며 "너무 흥미롭다"고 귀띔했다.
한편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5일까지 영화의전당 일대에서 열린다.
<사진출처=송효진기자(Dispatch), 부산국제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