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이아진기자] 연상호 감독의 좀비 세계관은 멈추지 않고 진화한다. 영화 '부산행', '반도'를 거치며 K-좀비물의 독보적인 지평을 열었다. 이번에는 신작 '군체'로 새로운 세계관을 선보였다.
'군체' 속 좀비는 단순히 날뛰는 시체가 아니다. 서로 소통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진화하는 '집단지성형 좀비'다. 언뜻 복잡해 보이는 담론이지만, 연상호의 손을 거친 영화는 거침없다.
배경은 초고층 빌딩이다. 폐쇄된 공간 안에서 인간 문명이 파괴된다. 그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집단지성. 연 감독은 (맹목적인) 보편성의 공포를 '군체'로 풀어냈다.
블록버스터형 재난 영화 속에 묵직한 우화도 녹아있다. 개별성의 소중함을 전한다. 파멸을 향해 폭주하는 인간 군상 속에서, 끝내 소수의 외침이 세상을 바꾼다.
'디스패치'가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연상호 감독을 만났다. '군체'를 만든 과정부터 감독으로서의 가치관에 관한 이야기까지 들었다.

◆ 집단 지성의 공포
'군체'는 현대인의 집단지성에 대한 연 감독의 깊은 고뇌로부터 탄생했다. 그는 군중의 집단성이 개인의 개별성을 무력하게 만드는 현상에 집중했다. 그 원인을 인터넷 알고리즘에서 찾았다. 집단지성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성에 주목했다.
연 감독은 집단지성을 좀비에 녹였다. 영화 속 좀비들은 정보를 공유하며 진화한다. 네발로 걷다 두 발로 걷고, 후각이 발달한다.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도 기괴하다.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고 눈과 입을 번뜩이며 비명을 내뿜는다.
"영화 '신체 강탈자'를 보면, 외계인이 인간을 발견했을 때 취하는 기묘한 액션이 있어요. 그것처럼 정보를 공유할 때도 상징적인 동작이 들어갔으면 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내부에서 너무 기괴하다는 우려도 나왔어요. 하지만 감독으로서 이건 기세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판단했죠."
하지만 좀비들에게도 약점은 있다. 연 감독은 개미의 생태 중 하나인 '앤트밀'을 반영했다. 선두 개미만 맹목적으로 쫓다가, 경로 오류로 인해 거대한 원을 그리며 돌다 굶어 죽는 현상이다. 개별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맹목적인 집단지성의 비극을 은유한다.
연 감독은 "집단지성을 검색하면서, 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가 개미의 생태를 보고 이 용어를 처음 제안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자연스럽게 앤트밀 현상을 작품에 녹이게 됐다"고 설명했다.

◆ 돌연변이의 필요성
좀비들의 선두자는 서영철(구교환 분)이다. 집단지성 좀비를 탄생시키고 감염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다. 오직 눈빛과 생각만으로 좀비 무리를 조종한다.
"기존의 감염형 좀비에 '네크로맨서'(시체 조종자)라는 개념을 결합했습니다. 두 부류가 부딪히는 서사는 그동안 거의 없었기에 흥미로운 시도였죠. 주제적으로는 집단을 맹목적으로 움직이는 일종의 선동가로 서영철을 설정했습니다."
서영철이 좀비 간의 집단지성에서 군림한다면, 생존자들은 선동에 휘말리거나 관계성에 얽매여 무너진다. 대표적으로, 구출을 위한 정부의 조건만 따르는 경찰 이봉석(이중옥 분), 누나 최현(김신록 분)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최현석(지창욱 분) 등이 있다.
"영화 속 집단지성은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좀비들의 집단지성은 완벽히 하나지만, 인간의 집단지성에는 이기심이 포함됩니다. 그래서 생존자 그룹은 좀처럼 한 방향으로 가지 못하죠. 서영철이 그런 맹점을 파고듭니다."
여기서 연 감독은 군집 생물의 특성을 가져와 생존자들의 운명을 갈랐다. 이 생물들은 단 하나의 약점만 노출되어도 일순간에 전멸하는 특징이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돌연변이를 만들어낸다. 영화 속 돌연변이는 권세정(전지현 분)과 공설희(신현빈 분)다.
두 사람은 다른 생존자들의 선동에 휘말리지 않는다. 자신들이 가진 냉철한 지식을 활용해 사태를 해결한다. 연 감독은 "우리 사회가 하나의 보편적 사고로만 똘똘 뭉쳐있는 게 왜 위험한지, 왜 소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 "좀비란, 마르지 않는 샘"
연상호 감독에게 좀비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상상력의 경계가 없다. 그는 "좀비 세계관은 한 번 구축해 놓으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군체'에서도 정부가 좀비를 환자로 볼 것인가, 아니면 제거 대상으로 볼 것인가 망설이는 딜레마가 등장한다"며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이러한 윤리적 잣대가 더욱 모호해졌다. 창작자로서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상상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연 감독은 "좀비란 무엇이며, 또 무엇을 상징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그 고민의 끝에서 언제나 새로운 세계관이 하나씩 파생된다"고 고백했다.
연상호표 좀비 유니버스는 스크린 너머, 또 다른 세상으로 뻗어나갈 준비를 마쳤다. 그는 '군체'의 속편을 소설과 게임 등 다각도로 구상 중이다. 이미 소설 집필은 끝마쳤고, 현재는 비주얼 구현을 위한 이미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게임의 구체적인 방향성은 열어둔 상태다. 다만 소설의 탄탄한 내러티브를 기반으로, 유저가 직접 서사를 이끄는 체험형 게임의 형태를 꿈꿨다.
"영화 작업을 오래 해오면서, 이야기가 오직 스크린 안에서만 소비되고 멈추는 것이 늘 아쉬웠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하나의 IP를 다양한 플랫폼에서 입체적으로 즐기기를 원하니까요. '군체'를 통해 한국 영화계에 없던 새로운 확장을 과감하게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 끝나지 않은 꿈
'군체'의 주제는 무겁지만, 전개는 군더더기 없이 빠르다. 아무리 복잡한 메시지를 담고 있더라도, 형식 자체는 대중이 직관적으로 따라올 수 있도록 단순하고 포용적이어야 한다는 게 연 감독의 지론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늘 휴머니즘이 녹아 있다.
"많은 분이 제 전작인 '돼지들의 왕'이나 '사이비'를 두고 시니컬하다고 평가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것 역시 휴머니즘의 일종이라고 봅니다.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르상티망이나 맹목적인 믿음 같은 어두운 감정들도, 결국 인간만이 가진 가장 흥미로운 본질이거든요."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곧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연 감독은 "인간이 가진 심연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탐구하고 싶어서 계속 메가폰을 잡는 것 같다. 그 멈추지 않는 갈증이 저를 움직이게 한다"고 강조했다.
OTT 시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연 감독의 시선은 단순히 인간의 본질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작년에 단편 영화 '얼굴'을 작업하면서 '기왕 이렇게 된 거 하고 싶은 건 다 해보자'는 거침없는 마인드를 장착하게 됐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목표는 국적도, 장르도 가리지 않았다.
"지난 10년과는 완전히 다르게, 앞으로의 10년은 작품의 사이즈에 연연하지 않으려고요. 오직 안 해봤던 작업 중심으로 치열하게 부딪혀 볼 생각입니다. 해외 로케이션 촬영도 많이 경험해 보고 싶고, 애니메이션 기법을 접목한 하이브리드 영화도 시도해 보고 싶어요. 그래야 감독으로서의 인생을 후회 없이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진출처=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