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교수님 계셔서 다행이었는데"…불안·고통 커진 환자들

정부를 향해서도 "막무가내식 증원 정책 밀어붙여 문제 키워"

(서울=뉴스1) 이기범 김민수 기자 = "그나마 교수님은 계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만둔다는 얘기가 들리니 막막하고 불안해요. 제자를 지키겠다는 마음은 알겠지만, 적당한 선이 있지 않을까요."

5세 자폐아, 3세 성조숙증 자녀를 둔 조 모 씨(34·여)는 25일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나오며 불안감을 토로했다. 이날부터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사직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한 탓이다. 여기에 30일부터 매주 하루 휴진을 한다는 얘기까지 들려오자 답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조 씨는 "아이가 매달 꾸준히 주사를 맞아야 하고 장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갑자기 교수님들이 그만두신다고 하면 어딜 가서 치료받아야 할지 불안하고 막연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은 불안한 심정으로 발걸음을 한 환자들로 붐볐다. 아직 교수 이탈 움직임이 가시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병원 곳곳에는 서울의대 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명의로 사직서를 제출하는 이유를 환자들에게 호소하는 글이 붙어 있었다.

아울러 지난 1일 의료 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 대해 반박하는 팩트체크 형식의 QR 코드 안내문도 진료실마다 부착됐다.

환자들은 교수들이 전공의가 떠난 자리를 메우고 있는 상황을 알지만, "마냥 교수 편에 서기는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췌장 관련 문제로 병원에 입원한 신경오 씨(67·남)는 "의사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병원과 환자들을 떠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정부와 의료계가 원만히 이야기해서 잘 타결해야지 서로 입장만 고집하면 환자 고통만 커진다"고 말했다.

일부 환자들은 두 달 넘게 갈등을 이어온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백혈병 환아 어머니인 박 모 씨(41·여)는 "아이가 항암 치료를 받는 입장에선 솔직히 너무 고통스럽고, 하루하루 불안하지만 정부가 너무 막무가내식으로 의대 증원 정책을 밀어붙여 문제를 키웠다"며 "현장에 남아 사명감 없이는 일하지 못할 교수들에게 정부도 희생만 강요한 게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정부는 수리된 사직서가 없다며 병원을 떠날 의대 교수가 많지 않을 것으로 낙관하지만, 의사 단체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교수 사직은 시간 문제라는 입장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환자들은 어차피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해 자신의 목소리조차 내는 것을 포기하고 있다"며 "환자들의 희생과 고통 속에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정부와 의료계는 어떻게든 합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분만실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중증의료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25일 이후에도 부디 의료 현장에 남아달라"며 "어떤 주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아무리 옳다 한들, 환자의 생명줄을 놓고 떠난 의사들이 내놓는 주장을 국민이 전적으로 신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이기범 기자 (Ktiger@news1.kr),김민수 기자 (kxmxs41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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