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2001년 5월 "당신하고는 못 살겠다"는 전 부인 A씨에게 극도의 배신감을 느낀 이모(당시 26)씨는 A씨의 목을 졸랐다.

의식을 잃은 채 쓰러진 A씨를 두고 인근에서 소주 1병을 사 와서 마시던 이씨는 소주병을 깨뜨린 뒤 A씨를 찔렀다.

유해화학물질 관리법(현 화학물질관리법)상 환각물질 흡입죄로 징역 6개월을 복역하고 출소한 지 8일 만에 저지른 '첫 살인'이었다.

교도소에서 복역 중 집을 나간 A씨의 행방을 쫓았던 이씨는 A씨를 찾아 "함께 살자"고 애원했으나 거절당하자 그 자리에서 목숨을 앗았다.

이씨는 살인죄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는 형량이 징역 8년으로 줄었다.

'흥분상태에서 이성을 잃고 피해자의 목을 조른 것일 뿐 살해할 범의가 없었다'거나 '술에 만취해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징역 10년은 무거워서 부당하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2009년 2월 가석방된 이씨가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르기까지는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베트남 여성과 재혼하고도 또 다른 베트남 여성과 불륜 관계를 맺은 이씨는 불륜 여성의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하자 베트남에서 이 어머니를 살해했다.

베트남법원에서 징역 14년을 선고받은 이씨는 약 8년 5개월을 복역한 뒤 2020년 8월 출소해 한국으로 추방됐다.

이때 이씨에게는 보호관찰이나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명령 등 어떠한 '보안처분'도 없었다.

살인죄를 두 번이나 저지르고도 40대 중반에 또다시 사회로 복귀한 이씨의 '세 번째 살인'은 이로부터 1년 7개월여 만에 일어났다.

이씨는 지난해 5월 5일 밤∼이튿날 새벽 동거녀 B씨를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했다.

조사 결과 이씨는 4월 중순께 우연히 B씨와 만나 술을 마시다가 호감을 느껴 B씨 집에서 동거를 시작했으나 2주 정도가 지난 범행 당일 B씨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의심하면서 말다툼을 벌이다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왜 안 하던 화장을 했느냐", "왜 내 친구에게 들이댔냐"며 따지던 이씨는 "내가 이 집에서 나갈까"라는 물음에 B씨로부터 "그래, 나가라"라는 답이 돌아오자 극도의 배신감을 느끼고는 세 번째 살인을 저질렀다.

흉기로 B씨를 여러 차례 내리치거나 휘두르다가 부러지자, 또 다른 흉기를 휘두르는 등 수십 곳에 이르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혀 살해한 끔찍한 범행이었다.

이른바 사이코패스 진단평가(PCL-R 검사) 결과 이씨는 40점 만점에 32점을 받아 사이코패스 성향이 있다고 나왔다.

미국의 경우 30점 이상일 때, 우리나라에서는 25점 이상이면 고위험군(사이코패스)으로 분류된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38점을 받았고, 전자발찌를 훼손하고 여성 2명을 살해한 강윤성이 30점 이상의 점수를 받는 등 악질 살인범이나 성범죄자 중에서도 30점 이상을 받은 사례가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매우 높은 점수다.

이씨는 성인 범죄자 재범 위험성 평가 척도 평가에서도 21점으로 재범 위험성이 높다고 나타났고, 알코올 사용 장애 선별검사에서도 적절한 조치가 필요한 문제 음주자에 해당했다.

다면적 인성 검사에서는 '친밀한 관계에 대한 애정욕구가 강하지만, 욕구가 좌절되거나 거부당할 때 화를 내는 등 상대의 권리나 감정을 존중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 강릉지원은 "피고인에게는 형벌로 인한 예방적 효과가 거의 없고, 오히려 사회에 복귀했을 재범 위험성이 높다"며 무기징역형을 내렸다.

또 이씨가 이성 관계와 관련해 쉽게 폭력성을 드러내거나 음주 상태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폭력성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보고 30년간 전자발찌 부착 명령도 내렸다.

판결에 불복한 이씨는 "술에 취해 이성적인 판단을 제대로 못 한 채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르렀고, 피해자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줬음에도 쉽사리 관계를 정리하려는 모습에 화가 나 범행했다"며 감형을 시도했다.

사건을 다시 살핀 서울고법 춘천재판부(황승태 부장판사)는 "원심의 양형 인자 선정은 정당하고, 원심의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이씨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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