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정태윤기자] (달리던) 말이 고꾸라졌다. 발을 헛디딘 게 아니다. 뒤에서 잡아당겼다.

말은 초식 동물이다. 시야는 350도로 알려진다. 육식 동물의 접근에 대비, (거의) 모든 상황을 눈으로 살핀다. 어쩌면, 그 넓은 시야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생존 수단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 제작진은 말이 볼 수 없는 ‘10도’를 악용했다. 말의 뒷다리에 줄을 묶은 것. 그리고 달리게 했다. 말이 안심하고 뛰던 그때, 사정없이 (줄을) 당겼다.

말은 넘어졌다. 아니, 목이 꺾인 채 고꾸라졌다. 말에 올라탄 스턴트맨도 떨어졌다. 제작진은 배우에게 달려갔다. 그의 안위를 살폈다. 어느 누구도 말에게 달려가진 않았다.

2021년 11월 2일, KBS ‘태종 이방원’은 이성계 낙마 신을 촬영했다. 그들은 ‘리얼리티’를 살렸다고 박수쳤을 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그 말은 사고 1주일 뒤에 죽었다.

말은 소품에 불과하다?

’동물자유연대’가 지난해 11월 촬영 영상을 공개했다. 시청자는 경악했다. 동물 학대 논란이 제기됐다.

KBS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부랴부랴 말의 상태를 체크했다. 급기야 지난 20일,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과 아닌, 해명 아닌, 변명을 길게 늘어놓았다.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났습니다. 외견상 부상이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말을 돌려보냈습니다.”

KBS는 말이 소품이라는 인식을 ‘스스로’ 드러냈다. 그들은 “시청자들이 말 상태를 걱정해 다시 확인했다”면서 “말이 1주일 뒤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디스패치’에 “KBS의 인식, 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사람이나 동물 등 생명체가 부상을 당하면 안위를 걱정하는 게 기본 상식입니다. 그들에게 말은, 동물이 아니라 소품입니다. 말이 다친 게 아니라 소품이 부러진 거죠.” (관계자)

시청자가 걱정하지 않았다면, 어느 누구도 그 말의 죽음을 모르고 지나칠 뻔했다.

KBS는 안전에 최선을 다했다?

KBS는 자기변명에 급급했다. 말에 대한 안전은 기본이고 말에 탄 배우의 안전까지 고려했다는 것.

“제작진은 며칠 전부터 혹시 발생할지 모를 사고에 대비해 준비하고 확인했습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촬영 당시 배우가 말에서 멀리 떨어지고 말의 상체가 땅에 크게 부딪혔습니다.”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라는 문구를 썼다. 하지만 대중들은 KBS가 기울였다는 ‘노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방원’ 측은 도대체 어떤 대비와 준비를 했을까.

당시 현장에 있던 스태프는 ‘카라’ 측에 “스턴트맨도 안전장치 없이 일반 보호장구만 착용했다”면서 “(배우가) 떨어져 잠깐 정신을 잃어 촬영이 중단됐다”고 전했다.

‘말’ 전문가가 현장에 투입됐는지도 의문이다. 박숙경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말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전문가가 있었다면 절대 이런 방식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말은 지능이 높아요. 감정도 있고요. 공감 능력도 있어 심리 치료에도 이용됩니다. 그런 말의 발목을 뒤에서 잡아당긴다? 말이 방어할 기회조차 박탈한 것입니다.”

KBS가 (안전을 위해) 기울였다는 ‘노력’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KBS는 7년 동안 줄을 묶었나?

‘태종 이방원’은 김형일 PD가 연출한다. 그는 지난 2014년 ‘정도전’ 촬영 당시 CP였다.

2014년 ‘정도전’ 때도 말의 다리에 줄을 묶었다. 심지어 화면에 줄이 그대로 노출됐다. 그리고 7년이 지났다. 2021년 ‘태종 이방원’에서 그 기법(?)은 다시 쓰였다.

KBS는 제작비를 탓할지 모른다. 일례로, 애니메트로닉스(애미네이션+일렉트로닉스)로 ‘동물로봇’을 만드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 한 신을 위해 투자할 여건은 아니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말을 빌리면 시간당 대여비만 주면 된다”면서 “대여마에 대한 속성을 연구할 시간이 필요하다. 제작비를 핑계로 서두르지 않았나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대안이 없는 걸까. SBS ‘육룡이 나르샤’는 스턴트맨만 떨어뜨렸다. 연출자의 고민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말의 다리를 (습관적으로) 낚아채지 않아도 된다.

단 ‘2초’의 낙마 신을 위해, 그 무엇도 희생당할 이유는 없다.

<사진출처=동물자유연대 인스타그램,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