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 뇌물' 부장검사 직무관련성 넓게 인정해 실형 선고한 것과 대비

'특별하게 친밀한 친구·개연성 없다' 이유로 뇌물 부정…檢 "즉각 항소"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비리 혐의로 구속기소 된 진경준(49) 전 검사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핵심 혐의인 '넥슨 공짜주식'은 직무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돼 논란이 예상된다. 항소심에서 다시 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앞서 검찰은 징역 13년과 추징금 13억7천여만원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주된 뇌물 혐의에서 무죄가 선고돼 추징도 인정되지 않았다. 형법상 뇌물은 몰수하게 돼 있고, 몰수가 불가능하면 그 가액을 추징한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진 전 검사장을 둘러싼 의혹의 핵심은 친구인 김정주(48) NXC 대표로 부터 공짜로 주식을 받아 130억원대 부당 이득을 챙겼다는 내용이다.

그는 2005년 6월께 김 대표로 부터 넥슨의 상장 주식을 매입할 대금 4억2천500만원을 무이자로 빌렸다. 김 대표는 이자를 받지 않는 것은 물론 진 전 검사장의 가족들 이름으로 된 계좌에 돈을 보내 자신으로부터 빌린 돈을 갚게 했다.

이렇게 취득한 진 전 검사장의 넥슨 주식은 이후 넥슨재팬 비상장 주식을 사는 종잣돈이 됐다.

넥슨재팬이 2006년 11월 유상증자로 신주를 발행하자 진 전 검사장은 8억5천370만원에 달하는 8천537주를 취득했다. 이후 넥슨재팬이 2011년 일본 증시에 상장해 주가가 크게 올랐고, 진 전 검사장은 지난해 주식을 처분해 총 120억원대 차익을 남겼다.

계좌이체 내역 등 증거에 의해 두 사람 사이에 돈이 오간 사실은 명백히 드러났다. 이 상황에서 검찰과 진 전 검사장은 돈의 성격, 즉 '직무 관련성'과 모종의 '대가성'이 있었는지를 두고 법정 공방을 벌였다.

형법이 정한 뇌물수수죄는 '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요구 또는 약속한 때' 처벌받는다고 규정한다. 금품이 오갔더라도 직무 관련성이 있었다고 인정돼야 뇌물죄가 성립한다.

검찰은 재판에서 "대기업을 운영하는 김 대표로서는 진 전 검사장의 영향력을 기대하고 돈을 건넸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진 전 검사장 측은 "오랜 친분에 의해 대가성 없이 받은 돈"이라고 맞섰다.

양쪽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린 상황에서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는 진 전 검사장 쪽의 손을 들어줬다. 김 대표에게 검사의 힘을 빌려야 할 만한 일이 없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수수한 이익과 그 직무 사이의 관련성 내지 대가성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검사는 소속 검찰청의 관할권과 자기 직위에 따라 직무권한이 생기는데 단지 검사라는 지위만으로 '받은 금품·이익'이 직무 관련성이 있다거나 대가성이 있다고 바로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또 김 대표가 사업·직무와 관련된 현안(사건 수사 등) 발생을 대비해 미리 뇌물을 준 것이라면 그걸 수긍할 만한 개연성이 있어야 하나 이 부분도 설명이 제대로 안 됐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진경준이 이익을 수수한 시기 및 그 액수와 김정주와 넥슨에 현안이 발생한 시기 사이에도 어떠한 상관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덧붙였다.

그러나 검찰과 법조계 일각에서는 과거 이번 사안의 본질적 성격이나 그간 판례와 비교해볼 때 법원이 '검사의 업무 관련성' 범위를 너무 좁게 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 측근과 수사 대상인 기업에서 뒷돈 수억원을 챙긴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김광준 전 서울고검 검사(부장검사급)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 전 부장검사에게 돈을 준 업자는 실제 사건에 연루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법원은 "향후 발생할 형사사건에서 김 전 검사를 통해 주임검사 등에 부탁해 도움을 받고자 한 것"이라며 뇌물죄를 유죄로 인정했다. 향후 사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건넨 돈도 뇌물이라고 본 것이다.

특히 당시 재판부는 '부장검사'라는 직위에 대해 "근무부서나 관할구역과 무관하게 오랜 검사 경력·인맥을 통해 전국 각지 검사, 검·경 수사관 등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수사 착수를 결정하고 종결하는 권한까지 가진 검사의 현행법 체계상 '막강한 권한'을 고려할 때 부장검사의 직무 관련성 범위를 넓게 본다는 뜻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개인적 의견을 전제로 "김 전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사건 때 포괄적 뇌물죄를 인정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 법원이 직무의 범위를 너무 좁게 해석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이번 판결은 국민의 일반적 법 감정과는 다소 떨어진 결론 아니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재판부는 진 전 검사장과 김정주 대표의 개인적 친분과 관련해 "진경준이 검사가 되기 이전부터, 김정주가 사업을 하기 이전부터 친밀하게 지내왔고, 이후 서로 특별하게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는 대학 시절부터 가까운 친구로 지내왔다는 사정을 들어 둘 사이에 오간 거액 금품의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을 사실상 부정한 취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아주 친한 친구', '특별하게 친밀한 관계'인 사이인 점을 지나치게 강조해 둘 사이에 오간 금품·이익의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 특혜 성격을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항소심에서는 두 사람의 친분과 서로 간에 오간 금품·이익의 직무 관련성 및 대가성을 놓고 검찰과 진 전 검사장 측이 한층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사건을 수사한 특임검사팀은 판결문을 분석한 뒤 바로 항소할 방침이다.

jaeh@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