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우크라이나 내무차관에 임명된 아나스타시아 데예바>

"너무 어리고 미숙하다." 對 "구세대가 낭비한 세월에 해독제 될 것"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밖으로는 러시아와 전쟁, 안으로는 만연한 부패와 그로 인한 정치 불안정이라는 내우외환에 시달리는 우크라이나에서 20대 여성 두명이 각각 내무부 차관과 법무부 산하 부패청산청장으로 깜짝기용돼 논란이 뜨겁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최근 변호사 자격증을 갓 딴 안나 칼린추크(23)를 공석인 (부패) 청산청장 대리에 임명했다. 그 1주일 전에는 의원 보좌관을 지낸 24세의 아나스타시아 데예바를 내무차관에 발탁했다.

부패청산청은 우크라이나가 가입하려는 유럽연합(EU)으로부터 가입 조건의 하나로 요구받고 있는 부패관리와 부패문화 청산을 책임지고 있고, 내무차관은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문제를 담당하고 있어서 둘 다 막중한 자리다.

'청산(lustration)'이란 말은 원래 소련의 지배를 받던 동구가 소련 붕괴 후 소련 공산주의 부역자들을 공직에서 축출하는 것을 가리킨 것인데, 우크라이나에 만연한 부패 역시 소련 시대의 유물이라는 뜻에서 부패청산도 의미하게 됐다.

우크라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선 두 사람에 대해 "너무 어리다" "미숙하다"는 등의 이유로 자질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게다가 데예바는 과거 찍은 개인적인 누드 사진과 이보다 점잖긴 하지만 패션전문 웹사이트에서 모델로 찍은 사진들이 등장하는 바람에 논란에 더 큰불을 지폈다. "능력이 아니라 얼굴 보고 기용했다" "어릿광대가 실패한 전문가들 자리를 꿰차는 서커스"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현 우크라이나 정부 각료 대다수의 나이가 30대이며, 총리 역시 38세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차관이나 청장급에 20대가 기용된 것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대부분 외신은 20대 여성 차관급 기용에 따른 논란을 흥미 위주로 전했지만, 영국의 BBC 방송은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처럼 부패에 찌든 나라에선 젊은 세대를 발탁 기용하는 것이 구세대 정치인이 낭비한 수십 년 세월에 대한 해독제로 보일 수도 있다"고 비교적 호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사진=우크라이나 부패청산청장 대리에 임명된 안나 칼린추크. BBC 제공>

칼린추크 부패청산청장 대리만 해도 이미 2년 전 바로 부패청산청 신설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올해 초 사임한 전임 청장 때 부청장으로 일한 이력이 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그 자리를 맡기에는 너무 어리고 미숙하다는 비난을 들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데예바 역시 의원 보좌관과 스웨덴 에너지 회사를 거쳐 전임 내무차관의 보좌관으로 일해왔기 때문에 전혀 문외한은 아니다. 데예바의 상관이었던 전임 차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데예바가 보좌관으로서 어떻게든 협상 목표를 달성하는 협상 수완이 뛰어났다고 극찬했다.

데예바를 발탁한 아르센 아바코프 내무장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사람들이 반대하는 주된 이유는 어리다는 것인데, (우크라이나가 속했던) 소련 시절 전통으론 그 자리를 괴물이 차지해야 하겠지만, 우리는 이제 다르게 하는 것일 뿐"이라고 비난에 반박했다.

한 전직 내무장관 보좌관도 "당신(데예바)이 나보다 한 세대 젊다는 게 정말 기쁘다"며 "소련 시절의 노예근성을 제거하기 위해선 당신 같은 사람들이 황야에서 40년을 헤매선 안 된다"고 적극 지지했다고 BBC는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2014년 2월 시민혁명을 통해 친러시아적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축출한 뒤 EU 가입을 서둘러 왔으나 이 때문에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부터 시작해 러시아와 사실상 전쟁을 치르게 됐다.

당시 우크라이나 국민이 들고 일어난 데는 소련 시절부터 뿌리박힌 부패와 정실인사 척결 요구도 큰 몫을 차지했다.

그러나 새로 들어선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 정권도 부패청산에 큰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 정부 관리 10만 명의 재산공개 조치를 단행한 데 이어 공개 범위를 30만 명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부패)청산법을 제정, 2010년부터 그때까지 정부 고위직에 1년 이상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선 10년 동안 어떠한 공직도 맡지 못하도록 금지하기도 했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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