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세균 취급 당했지만 교사는 무시"…시민단체 "피해자에 또 가해"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일본의 한 중학생이 동일본대지진으로 원전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福島)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입했다가 '이지메'(집단괴롭힘)를 당한 사실을 기록한 수기가 공개돼 일본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

16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원전사고로 후쿠시마에서 요코하마(橫浜)로 거처를 옮긴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 쓴 수기가 전날 대리인인 변호사를 통해 공개됐다.

이 학생은 원전 사고가 난 2011년 초등학교 2학년 때 전입해온 뒤 급우들이 자신의 이름에 세균을 붙여 부르는 등 이지메를 가했다고 밝혔다. 공개된 수기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작년 써 놓은 것이다.

그는 수기에 "세균 취급을 당했다. (급우들이 나를) 방사능이라고 생각해 항상 괴로웠다"며 "후쿠시마 사람들은 집단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또 초등학교 5학년 때는 동급생들이 원전사고로 받은 배상금이 있을 것이라며 요구해 유흥비를 댔다며 "저항하면 또 괴롭힘이 시작될것이라고 생각해 그저 무서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아울러 "동급생들에게 발로 차이거나 주먹으로 맞고 계단에서 밀쳐져 언제, 어디서 넘어질지 몰랐다"며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내 말을 믿어주지 않고 무시했다"고도 썼다.

그는 집단괴롭힘으로 인해 자살까지 생각했다고도 했다. 수기에 "지금까지 몇번이나 죽으려고 생각했지만 대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괴롭지만 나는 살기로 결정했다"고 적었다.

이 학생은 그동안 드문드문 학교에 나가지 않고 있다가 현재는 일종의 대안학교인 프리스쿨(free school)에 다니고 있다.

학생의 부모는 수기를 보고 집단 괴롭힘 사실을 알게 된 뒤 학교와 지자체 교육위원회가 적극적으로 조사에 나서지 않자 기자회견을 통해 수기를 공개하고 사건의 공론화에 나섰다.

수기는 동일본대지진 극복에 그동안 힘을 쏟아온 일본 사회에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일본 정부가 원전 사고 후 후쿠시마현 부흥에 힘쓰고 있지만, 원전 주변에 살다가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간 대부분의 주민들은 원래 삶의 터전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후쿠시마현 나라하마치(楢葉町)의 경우 사고 당시 피난지시가 내려진 뒤 작년 9월 해제됐지만 지난 9월 기준으로 귀환율은 8.7%에 그쳤다.

피난자를 지원하는 후쿠시마의 한 시민단체 직원은 요미우리신문에 "뉴스를 보고 엄청 놀랐다. 가슴이 아팠다"며 "(후쿠시마 출신 아동들에 대한) 집단괴롭힘은 특히 사고 직후인 2013년께에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아이의 이름에 세슘(방사능 물질)을 붙여 불린 사례도 들은 적 있다"며 "앞으로 후쿠시마에 살다가 진학이나 취직으로 다른 지역에 나갈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대안학교 대표인 사토 마사히로(佐藤昌弘)씨는 "후쿠시마와 원자력발전에 대해 어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아이들이 헤아려 알고 이를 집단괴롭힘으로 표현한 것 같다"며 "재난 피해자에게 두번 타격을 주는 행동에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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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전학을 갔다가 괴롭힘을 당한 학생의 수기, 후쿠시마 제1원전 3호기 폭발 당시 영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