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단속 귀가 후 50여 분 만에 다시 나타나 범행…'엽총 난사 재구성'

(고성=연합뉴스) 이종건·이재현 기자 = "파출소에서 엽총 난사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전 직원 방탄복 착용 후 검거 지원 바랍니다."

15일 새벽 강원 고성경찰서가 근무 중이던 경찰관을 향해 엽총 2발을 난사하고 달아난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다.

경찰에 붙잡힌 이모(60) 씨는 음주 적발에 불만을 품고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고성경찰서 죽왕파출소 내 CCTV와 순찰차량 블랙박스 등에 포착된 엽총 난사사건의 재구성은 이렇다.

이 씨는 지난 14일 저녁 지인과 장소를 옮겨 2차에 걸쳐 술을 마신 뒤 음주 상태로 자신의 지프 차량 운전대를 잡았다.

이 씨는 오후 9시 53분께 고성군 죽왕면 삼포리 모 초등학교 앞 7번 국도에서 음주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적발됐다.

당시 죽왕파출소로 임의 동행한 이 씨는 만취해 횡설수설했지만 비교적 순순히 호흡측정에 응했다.

오후 10시 30분 측정된 이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운전면허 취소 수치인 0.127%였다.

경찰은 음주 측정 20분 뒤인 오후 10시 53분께 이 씨의 지프 차량을 파출소 주차장에 보관한 뒤 이 씨를 순찰차량에 태워 파출소에서 10여 분 거리인 집까지 데려다줬다.

음주측정 불만 엽총 난사한 흔적

(고성=연합뉴스) 이종건 기자 = 음주 적발에 불만을 품고 파출소를 찾아가 경찰관을 향해 엽총 2발을 난사하고 달아난 6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은 사건이 벌어진 강원 고성경찰서 죽왕파출소 캐비닛(위)과 벽면에 남아 있는 산탄 흔적. 60대가 발사한 엽총은 목재 캐비닛을 관통하고 콘크리트 벽면이 패어나갈 정도로 위력이 강해 경찰관이 맞았더라면 큰 화를 당할 뻔했다. 2016.11.15 momo@yna.co.kr

당시 이 씨는 자신을 집에 데려다준 경찰관에게 횡설수설하면서 "두고 보자"는 말을 남겼으나, 경찰관들은 주취자의 일반적인 행태여서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이 씨를 귀가시킨 뒤 파출소 안에는 김영식(60) 경위와 이호선(31) 순경이 서류 작성을 하고 있었다.

이 씨는 50여 분 뒤인 오후 11시 40분께 파출소에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이 씨의 양손에 엽총이 들려 있었다.

파출소 출입문을 연 이 씨는 "다 죽이겠다"며 욕설과 함께 '서서 쏴' 자세로 이 순경을 향해 엽총 1발을 쐈다.

이 순경을 향해 날아든 산탄은 반사적으로 몸을 날린 이 순경 옆을 스쳐 파출소 벽면을 파고들었다.

첫발에 실패한 이 씨는 이번에는 김 경위를 향해 1발을 발사했으나 빗나간 산탄은 캐비닛을 뚫었다.

불과 30∼40초 사이에 벌어진 이 씨의 엽총 난사에 근무 중이던 경찰관들은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정년을 불과 2년여 앞둔 김 경위는 장전된 산탄 2발이 발사된 직후 직감적으로 '엽총을 빼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 씨에게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였다.

5분여가량 온 힘을 다해 이 씨와 격투를 벌인 김 경위는 이 씨에게서 엽총을 빼앗았다.

엽총을 빼앗긴 이 씨는 자신의 집에서 몰고 온 1t 화물차를 몰고 도주했다.

파출소 총기 사고 직후 고성경찰서는 오후 11시 43분 전 직원에게 방탄복 착용을 지시하고 이 씨 검거에 나섰다.

사건 발생 10분여 뒤에는 주요 도주로에 경찰력이 배치됐고 112 타격대도 출동했다.

이날 오전 0시 30분 전 직원을 비상 소집한 경찰은 1시간 20여분 만인 오전 1시 6분께 달아난 이 씨를 파출소에서 3∼4㎞가량 떨어진 송지호 철새관망 타워 주차장에서 붙잡았다.

검거 당시 이 씨의 차량 등에는 엽총 산탄 10여 발이 추가로 발견됐다.

이 씨에게서 엽총을 빼앗은 김영식 경위는 "엽총에 2발만 장전된 사실을 알지 못했지만 오로지 엽총을 빼앗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자칫 잘못하면 동료들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을 던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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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건 당시 CCTV, 파출소 엽총 난사 흔적=제공 강원지방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