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자·유병언 사건 변호…최태민 묻자 "절대 말 못해"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로 행세한 최순실씨 일가의 비리를 검찰이 포착하고도 처벌하지 않은 비밀이 37년째 풀리지 않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서울지검 검사로서 최순실씨 아버지인 최태민씨를 수사한 것으로 알려진 A(81) 변호사가 진실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일 오후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A 변호사는 책상 위 최순실씨 검찰 소환을 다룬 신문 기사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기자의 질문을 모른 척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착용했으나 불쑥 찾아온 기자를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손사래를 쳤다.

A 변호사는 과거 서울지검의 마지막 단독 특수수사부 부장검사였다. 이후 특수부는 3개 부서로 갈라졌다. 특수부장 시절 그의 명성은 대단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이 주요 성과로 꼽힌다.

이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 사후 윗선의 지시로 서울 시내 호텔에 수사본부를 차렸다. 한 달 남짓 수사요원 수십 명을 동원해 최태민씨 주변 비리를 샅샅이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 본인도 불러 신문했다.

하지만 수사본부는 최씨를 재판에 넘기지 않고 무혐의로 처리했다. 최씨가 상당수 비리 혐의를 부인하고 '박근혜 영애(令愛)'에게 책임을 미뤘다는 것이 후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사이버 종교를 추적하던 고 탁명환씨의 글이나 A 변호사를 아는 원로 법조인들의 입을 통해 비사(秘史)처럼 전해졌다. 공식 수사 기록 등은 남지 않았다.

A 변호사는 1981년 개인적인 이유로 퇴직하고 변호사로 개업해 현재까지 사무실을 운영해왔다. 당시로선 서울지검 특수부장을 지내고 검사장에 오르지 못한 몇 안 되는 에이스 검사였다.

그는 개업 이듬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인척인 장영자씨의 어음 사기 사건을 변호했다. 이번 최순실씨 사건을 '제2의 장영자 사건'으로 부를 만큼 대표적인 정권 실세 비리였다.

또 1991년 오대양 사건 발생 후 상습 사기 혐의로 기소된 유병언씨를 세모 고문 변호사로서 변호한 전력이 눈길을 끈다. A 변호사는 유씨가 "언론 재판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1970년대 후반 최태민씨의 재산 형성 과정, 그와 박근혜 대통령의 초기 관계 등 내막을 가장 잘 알 것으로 보이는 A 변호사는 그러나 "옛날얘기를 물으면 나는 할 말이 없다"며 입을 닫았다.

그는 '최태민씨가 뭐라고 진술했나', '비리가 있다면 왜 사법처리하지 않았나' 등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계속된 물음에 끝내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정을 냈다.

A 변호사 사무실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사무장마저 "경력이 화려하지만, 단 한 번도 드러낸 적 없는 분"이라고 말을 아꼈다.

그의 사무실 안팎에는 변호사를 나타내는 표시가 하나도 없었다. 굳이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입구 옆에 '백해당'(柏海堂)이라는 간판만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누구보다 입이 무거운 그의 아호(雅號)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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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976년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명예총재-최태민 총재, A변호사 사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