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화재 희생자 시신·유류품 유족에 인도…시커먼 목걸이·시계 받고 오열

시신·영정사진·유품 볼 때마다 통곡·혼절…"책임자들 시신 한번 보라" 분노도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이걸로 전화라도 했으면 달려갔을 텐데… 아버지… 아버지…."

노란 서류봉투를 건네받은 진민철씨는 오열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유가족 대표 역할을 하며 사고 수습 내내 침착한 모습을 보였지만, 아버지가 버스에 남긴 유류품을 받아들고 결국 무너졌다.

진씨는 불에 타서 배터리가 터져버린 휴대전화 화면을 끝없이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울었다. 그는 아버지의 휴대전화에 이어 시커멓게 타버린 어머니의 금목걸이도 받아들어야 했다.

진씨는 이번 사고로 부모님, 숙모를 모두 잃었다. 그의 삼촌만이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16일 오후 울산시 남구에 있는 장례식장인 울산국화원.

이날 이곳에는 사흘 전 경부고속도로 언양분기점에서 관광버스 화재로 숨진 10명의 합동분향소가 차려졌다.

사망자 가족의 DNA를 분석해 신원을 확인한 경찰이 유족에게 고인의 시신을 인계하는 절차가 진행됐다.

경찰은 시신 인도에 앞서 버스에서 수습된 희생자들의 유류품을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화재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어떤 물품인지, 누구 것인지 확인할 수 없는 유류품도 있다"고 경찰이 설명했을 때는 여기저기서 흐느낌과 탄식이 터져 나왔다.

경찰은 수습할 때 시신 팔목에 부착했다는 라벨 순서대로 고인을 호명하고, 유족에게 유류품을 전달했다.

한명 한명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커지던 흐느낌은 이내 통곡으로 변했다.

봉투에서 유류품을 꺼내보던 가족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일부 유족은 통곡하다가 혼절해 119구급차가 오기도 했다.

이미 정신을 놓은 유족들은 그러나 더 잔인한 시간을 맞아야 했다.

한 가족씩 안치실로 내려가 시신을 확인하는 일이다.

불에 타서 알아볼 수도 없는 가족과 대면해야 했다.

유족들은 그러나 사고 이후 그토록 그리워했던 가족을 보려고 어려운 발걸음을 뗐다.

시신을 확인한 유족들의 충격은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려웠다.

저마다 슬픔과 분노를 안고 돌아왔고, 일부는 "사고를 낸 버스업체 책임자들이 (불에 탄)시신을 한번 보라"면서 울부짖었다.

유족들은 이날 거듭되는 충격 속에 통곡하다가 탈진하기를 반복했다.

오전에는 10명의 영정사진이 늘어선 합동분향소가 마련돼 유족들이 함께 찾았다.

유족들은 처음으로 인사나 올리자며 분향소에 들어섰으나, 제대로 인사를 올릴 수 없었다.

사진을 보자마자 밀려드는 감정에 여기저기 쓰러지거나 주저앉아 하염없이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고로 숨진 성모(61)씨의 아내는 구석에 쓰러진 채 "아픈 남편을 내가 살렸는데, 너희가 왜 죽이냐. 내 남편 살려내라. 억울하다"는 울음과 분노가 섞인 외침을 반복했다.

그는 결국 실신해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응급처치만 받고 다시 돌아왔다.

성씨 아내는 사고 당일 시신이 안치된 서울산보람병원에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통화했던 남편이 연락이 안 된다"면서 "부부동반 여행이라 애초 남편과 함께 가려 했다가 다리가 아파서 나만 빠졌는데…"라며 발을 동동 굴렀었다.

그는 시신을 실은 구급차가 들어올 때마다 "시신을 보게 해달라. 다리를 보면 우리 남편인지 안다. 아니면 신발이라도 보게 해 달라"고 호소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 남편을 아내는 사흘 만에 만났다.

이날 분향소에는 사고버스 업체인 태화관광 대표와 임직원들이 방문해 조문했다. 이들은 유가족 등이 구성한 울산버스사고피해자모임과 짧은 만남을 가진 뒤 돌아갔다.

고인들의 빈소는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울산국화원에 모두 차려졌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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