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인천의 한 종합병원에서 간호사의 실수로 군인이 사망했는데요. 해당 병원 측이 증거를 은폐하려 했던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인천지방법원은 인천 가천대 길병원 간호사 A(26·여)씨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A씨는 지난해 3월 9일 오후 1시 50분께, 손가락 골절 접합수술을 받고 병동으로 온 육군 B(20) 일병에게 주사를 놔줬습니다.

당초 의사가 B일병의 처방전에 쓴 약물은 궤양방지용 '모틴'과 구토방지용 '나제아'였는데요.

A씨는 마취 때 기도삽관을 위해 사용하는 근육이완제 '베카론'을 B일병에게 투약했습니다.

B일병은 주사를 맞기 전에는 휴대전화로 카카오톡을 주고 받는 등 이상증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투약 후 3분 만에 심정지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정신을 잃었는데요.

B일병은 이날 오후 2시 30분께, 병실을 찾은 누나에 의해 뒤늦게 발견됐습니다.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의식불명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사고 한 달여만인 지난해 4월 23일, 저산소성 뇌 손상 등으로 사망했습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주치의가 지시한 약물을 정상적으로 투여했다"고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경찰이 신청한 A씨의 구속영장도 기각됐었는데요.

재판부는 A씨가 투약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지만, 정황 증거 등을 토대로 검찰의 공소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사고 후 병원에서 수시로 비워야 하는 간호사의 카트에서 베카론 병이 발견됐습니다.

병원 측이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사고 당일 병원에서는 의료사고에 대처하는 적정진료관리본부장과 병원 부원장, 담당 의사, 법무팀장 등이 모여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날 회의에서는 "병동에서 근육이완제가 발견됐다. 병동에 있으면 안 되는 것인데"라는 말이 오갔습니다.

해당 병원 간호사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의료사고이며, 투약사고'라는 말이 돌았다고 합니다.

병원 측은 사고 후 B 일병이 숨진 병동에 설치된 비치약품함에 손댔습니다. 베카론 3병을 빼내고, 고위험 약물의 위치도 바꿨습니다.

병원 직원들도 동참했는데요. 해당 약물을 병원 내 약국에 반환한 것처럼 '약품비품 청구서와 수령증'을 허위로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이 서류들은 약국이 아닌 적정진료관리본부로 넘겨졌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 다시 약품 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에 전해져 책상서랍에 보관됐는데요. 수사당국이 이 서류를 찾았습니다.

해당 병원 적정진료관리본부장은 지난해 5월 수사기관 조사에서 "잘못 투약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병원 측과 A씨가 오투약을 사전에 알았던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투약 후, A씨가 B일병과 5분 가량 대화를 나눴다는 간호기록지의 기록도 허위로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과실로 군 복무를 하던 젊은 피해자는 생명을 잃었고 유가족들은 큰 고통을 느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병원의 증거 은폐 정황도 비난했는데요.

재판부는 "병동에서 보관하던 베카론 병을 두고 병원 관계자들이 한 일련의 조치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사고 당시 병동에 해당 약물이 어느 정도 보관돼 있었는지 등 판단이 불분명해지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또 "병원의 전반적인 약품관리 상황이 체계적이지 못했고 그 과실도 무시할 수 없다"며 "언제든 환자에게 약물이 잘못 투약될 가능성이 있었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