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새벽. 동네 슈퍼에서 불이 났다. 가게 주인 할머니 김순남 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 그리고 남은 건, 할머니의 혈흔 뿐.

단서도, 목격자도 없는 상태. 그런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할머니의 실종 전단지 아래에 "순남 할머니는 둘째 아들이 죽였다"는 메시지를 적고 다녔다.

하지만 둘째 아들은 명백히 범인이 아니라는 점이 밝혀진 상황. 그렇다면 도대체 범인은 누구일까. 또, 그 낙서는 누가 적은 것일까.

SBS-TV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의 2011년 12월 10일 방송분, <기이한 마을, 이상한 실종, 서천 기동 슈퍼 화재 미스터리>를 정리했다.

2008년 1월 24일 오전 6시, 마을 사람들은 이상한 폭발음을 듣게 된다. 동네 어귀에 있던 '기동슈퍼'에서 화재가 일어난 것.

건물 안채에서 잠을 자던 슈퍼 주인 할머니 김순남 씨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듯 했다. 문이 안쪽에서 굳게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김 할머니의 시신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것.

할머니가 남긴 유일한 흔적, 바로 안방의 혈흔이었다.

경찰은 기동 일대를 샅샅이 뒤졌지만, 할머니를 발견할 수 없었다. 마치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홀연히 사라진 김 할머니.

그로부터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곳 사람들은 이 일을 <기동 슈퍼 살인사건>이라 불렀다.

기동 슈퍼 주인인 김순남 할머니다.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어머니를 찾아, 자식들은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헤매왔다. 원로 개그맨인 김성남 씨는 실종된 김 할머니의 장남이다.

아들이 TV에 나오는 것을 평생의 자랑거리로 삼았다는 김 할머니. 그런데 할머니의 생신을 2일 앞두고, 자식들은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듣게 된 것.

김성남 씨는 "아들이 된 입장에서 정말 알고 싶다"며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라고 호소했다.

화재 2일 전으로 돌아가보자. 마을 주민 정 씨는 마지막으로 김 할머니를 목격했다.

당시 가게에는 단골 손님 한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있었을 뿐, 평소와 다른 점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 다음으로 가게에 들린 사람. 옆집 택배를 슈퍼에 맡겨 달라는 부탁을 맡고 온 택배기사다.

다음으로 들린 손님, 집에 가는 길에 들린 여성이다.

그리고 그날 마지막으로 가게에 간 마을 여성 김씨.

그는 남편과 함께 택배를 찾으러 갔다. 그런데 할머니의 가게는 문이 잠겨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고.

김씨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지만, 슈퍼 안채에서 누군가 조용히 불을 꺼 버렸다고 한다.

그 다음날, 할머니의 가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슈퍼에 원인모를 불이 일어난 건 바로 그 다음날 새벽.

최초 신고자인 택배기사 박 씨는 "그날 이 쪽에 해가 뜬 줄 알았다"며 "불길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근처에 차를 세우고, 소방서에 급히 신고전화를 했다.

슈퍼에 불을 지른 사람은 누굴까. 그 쪽에 만약 누군가가 있었다면, 소방차가 오기까지 박 씨가 목격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박 씨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목격자도, 범인의 단서도, 그 어떤 것도 없는 상황.

금전을 노렸을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마을 주민은 "거긴 큰 마트가 아니라, 그냥 담배 한갑, 막걸리 하나 파는 곳"이라고 증언했다.

원한 관계에 의한 범행일까. 마을 주민들은 이구동성 "할머니는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다"며 "모두가 어머니라 부를 정도로 따랐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알' 팀은 단서를 찾기 위해 전문가를 찾았다.

분석 결과, 최초 발화점은 김 할머니가 머물던 안방. 이 안방은 김 할머니의 혈흔이 발견된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범인은 할머니를 살해하고, 시신을 옮긴 뒤, 이 곳으로 다시 돌아와 불을 지른 셈이다.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의 말에 따르면, 슈퍼는 쇠사슬로 문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고 했다. 따라서 범인은 이 슈퍼의 뒷문을 통해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불이 났을 때, 이 뒷문 또한 잠겨져 있었다. 범인이 빠져나갈 때 차분하게 뒷문 또한 잠궜다는 이야기다.

불을 지르고 빠져나가는 순간에도 결코 범인은 당황하지 않았다. 앞문, 뒷문을 모두 철저히 잠근 것을 보면, 어쩌면 범인은 이 집 구조에 익숙한 인물이었을지 모른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22일, 불이 일어난 것은 24일 새벽이다. 즉, 범인은 2일에 걸쳐 일어났다.

"낯선 사람이 슈퍼에서 현금을 갈취하려는 목적이었다면, 돈을 뺏고 피해자를 죽인 뒤 빨리 도망가는 것이 맞다. 그런데 범행은 화요일 밤인데, 목요일까지 끌었다는 점이 이상하다.

이 사람에게는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할 필요가 있었던 거다. 그렇다고 한다면 피해자가 굉장히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숙명여대 박지선 교수)

할머니가 사라진 뒤에는 묘한 소문이 떠돌았다. 읍내 곳곳에 이상한 낙서가 등장한 것. 낙서에는 "할머니를 죽인 사람은 둘째아들"이라고 적혀 있었다.

김순남 할머니에게는 개그맨 김성남 씨를 비롯, 모두 5명의 아들이 있다. 수수께끼의 낙서는 구체적으로 둘째 아들을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은 그럴 일이 없어 보였다. 둘째 아들은 충남과 한참 먼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사건 당시 CCTV와 통신기록을 모두 조회해, 모든 알리바이도 입증한 상태다.

게다가 효심이 지극했던 것. 할머니 실종 이후, 슈퍼 근처에서 비닐하우스를 짓고 6개월 간 살며, 어머니를 수색했던 사람도 둘째아들이다.

소문에 살해 동기를 부여한 건, 할머니의 금전상황이었다. 할머니는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동네의 집을 몇 채 가지고 있었다.

또한 할머니가 갖고 있던 땅의 일부가 도로에 편입되며, 할머니 앞으로 1억 2,000만 원의 보상금이 나올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사이, 우리는 뭔가 중요한 걸 놓쳤을 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낙서를 하고 사라진 그 사람.

서천 지역 곳곳에서 낙서는 모두 비슷하게 나타났다. "순남 할머니는 둘째 아들이 죽였다."

언뜻 보면 둘째 아들이 키워드인 듯한 문장이긴 하지만, 낙서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순남 할머니. 낙서를 한 사람은 '슈퍼 할머니'가 아닌, '순남 할머니'라 친근하게 불렀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둘째 아들이 죽였다'는 문장이다. 당시 할머니는 실종 상태였다. 실제로 할머니가 사라진 뒤에는 마을에 "할머니가 절에 들어간 것"이라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 낙서는 '죽었다'는 단정적 표현을 쓰고 있었다.

낙서를 한 것이 고의적으로 여론과 수사의 방향을 악의적으로 가족에 돌리려 한 것이라면, 당시 그는 용의선상에 올랐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도 여럿의 용의자가 있었다. 우선 가게 단골 손님인 박 씨(당시 40대 일용직 노동자).

슈퍼에 간장을 납품하던 식품업체 김 씨는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나는 '그놈이다' 하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실종 1달 전, 가게에 있던 손님과 할머니가 싸웠다는 것.

"나이 많은 할머니한테 (박 씨가) 술에 취한 채로 막 욕을 했다. 가만히 안둔다고도 했다. " 

그리고 이 남자는, 화재 2일 전 할머니 가게에서 술을 마셨던 장본인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김 할머니네 가게에서 술을 마셨다고 했다.

수사결과는 심상치 않았다. 통신 기록을 조회해보니, 이 남자가 사건 1달 동안 할머니에게 전화를 건 것만 20여 차례. 게다가 사건 당일 행적도 모호했다.

조사를 했을 때 태도도 이상했다. 이 남자가 계속해서 불안해 하고, 부들부들 떨었다는 것.

하지만 수사는 돌연 중단됐다. 그는 심리 부적격자로 판단돼, 거짓말 탐지기를 받을 수 없었다.

'그알' 팀이 만난 박 씨. 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사건 당일 오전, 할머니 슈퍼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간 이후 단 한 번도 할머니를 보지 못했다는 것.

밤낮없이 할머니에게 전화를 건 것도 대수롭지 않은 이유였다 했다.

"원래 술 먹으면 해장술을 잘 한다. 아침에 전화해서 '문 열었냐'고 물어볼 때도 있고, 그냥 싸울 때도 있고." (박 씨)

"싸우는 건, 술 많이 먹는다고 뭐라 하는 것이다. 자식같이 생각하는 거다 한 마디로..." (박 씨)

할머니의 잔소리에 가끔 다툰 건 사실이지만, 평소 둘 사이는 부모자식과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혼자 사는 그는 끝내 알리바이를 입증하지는 못했다.

기동슈퍼 사건으로 용의 선상에 오른 건 그 뿐만이 아니다. 세입자 전 씨도 있다. 그는 돈 문제로 할머니와 갈등을 빚었다는 소문이 났다.

경찰 조사 결과, 전 씨에게 특별한 혐의점은 없었다. 하지만 그 또한 범행 날의 알리바이를 입증하진 못했다.

'그알' 팀은 마을 주민에게서 단서 하나를 전해들었다. 화재 발생 1달 전, 묘한 절도 사건이 있었다고.

"할머니가 전혀 말을 안 하더라. 그냥 부들부들 떨기만 하셨다. 얼굴은 아는 사람이라 하면서 말씀을 안 하셨다. 그것만 이야기해주셨어도, 이 수수께끼가 빨리 풀렸을지 모른다." (동네 주민)

그런데 그 무렵, 특별한 강도 전과자 하나가 인근에 머물고 있었다. 전과 6범인 이 씨다. 그는 2001년 김 할머니를 상대로 강도 행각을 벌였다가 구속된 바 있다.

실제로 그는 화재 당일 서천을 빠져나갔다.

"걔가 그때 공주에 있었지. 5년을 살고 나와 서천에 왔다가, 바로 인천으로 갔다."

하지만 기차 시간 확인 결과, 그는 간발의 차로 용의 선상에서 배제됐다. 그렇게 미궁에 빠져버린 기묘한 화재사건.

'그알' 팀은 택배를 찾으러 갔던 부부를 다시 만났다. 뜻밖에도, 이 아주머니의 남편이 당시를 기억하고 있었다.

"차는 없었고 자전거가 하나 있었다."

그날 밤, 기동슈퍼에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이 있었다는 것. 기동 슈퍼 미스터리를 밝힐 첫 번째 퍼즐이다.

범인이 사건 현장을 반복해 찾은 이유다. 즉, 할머니의 시신을 옮길 매개체가 없었다는 것.

또, 뜻밖의 제보가 들어왔다. 최초 신고자 박 씨다. 그는 경찰에게 말하지 않은 한 가지를 이야기했다.

"확실하게 기억이 났다면 아마 경찰에 이야기를 했을 것 같다. 수사에 혼선이 생길 수도 있고 관계없는 사람이 피해 볼 수 있어서 말을 안 했던 것이다. 내가 그 때 슈퍼 앞에 주차된 차를 본 것 같아서.."

불이 나기 2시간 전, 슈퍼 앞에 수상한 차량이 있었다는 것.

"흰색. 차종은 모르겠고, 앞이 둥그스름했다. 중형도 경차도 아니고 소형인데, 승용차였다." (박 씨)

하지만 그 이상의 단서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알' 팀은 박 씨의 기억을 되살리기로 했다. 박 씨와 함께 최면 수사를 진행하기로 한 것. 사건 담당 경찰들도 협조하기로 했다.

지금부터 박 씨의 기억을 2008년 1월, 화재가 났던 그 날로 돌려 보자.

"본인 어디까지 갔어요?" (수사관) 

"슈퍼 다 왔어요." (박 씨)

"불 어느 정도에요" (수사관)

"집 삼켰어요. 아무도 없고, 지붕이 무너지려고.." (박 씨)

"주변에 뭐 보이는 게 있어요? 집 말고?" (수사관)

"없어요." (박 씨)

박 씨는 슈퍼가 화염에 휩싸였던 그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

"천천히 돌려보세요." (수사관)

"출근해요." (박 씨)

"그럼 다시 앞으로 천천히 돌려 보세요. 슈퍼가 보일거에요. 그럼 스톱 버튼을 누르세요." (수사관)

지금부터 화재가 나기 2시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본다.

"길가에 뭐가 있어요?" (수사관)

"안 보여요." (박 씨)

그런데 최면을 잘 따라주던 박 씨가, 갑자기 주변이 깜깜해진다고 말한다.

"자, 그럼 필름을 거꾸로 감아보세요. 천천히 감아보세요. 또 다른 게 있어요?" (수사관)

"깜깜해서 안 보여요." (박 씨)

몇 번이나 시도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마치 뭔가에 가려진 듯 그 부분만 보여지지 않는다는 것.

"빈 공간이 아니고 검은.. 뭘로 가려진 것처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박 씨)

법최면 수사관은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것 같다"며 "스스로 부담이 생겨, 그 부분을 까맣게 없애 버리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유일한 단서는 그렇게 신고자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지금도 가족들은 범인의 실체가 드러나길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