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rip l 황지희] 스위스여행은 꼭 9월이어야만 했다. 이유를 몰랐던 친구에게 퀸의 음악을 조용히 들려줬다.
퀸의 리더인 프레디 머큐리가 사랑한 곳. '제2의 고향'이라고 했던 몽트뢰(Montreux)를 가보고 싶었다.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레만호를 바라보며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몽트뢰는 기대만으로 끝나지 않은 너무 아름다운 도시였다.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 외에도 몽트뢰에선 시간 보낼 것들이 많다. 시옹성으로 향하면 또다른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시옹성은 영국 시인 바이런이 '시옹성의 죄수'란 시를 지은 곳이다. 제네바의 한 종교지도자가 4년씩이나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는 사연을 담은 시였다. 때문에 시옹성의 세번째 기중에는 바이런의 이름이 조각돼 있다고 한다.
몽트뢰 역에서 시옹성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가지다. 이왕이면 레만호를 가로지르는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멀리 보이는 시옹성. 저렇게 아름다운 곳이 무시무시한 감옥이 있던 곳이란다. 갇힌 공간이 어딘가가 중요한게 아니다. 갇혀 있다는 그 자체가 공포다.
감옥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평화롭고 따스한 분위기 였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이 철창살을 보면 비로소 실감이 난다. 죄수들을 가둬 뒀다가 멀리 노예로 팔기도 했단다.
이 철문이 열리면 다시는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었다는데. 노예로 팔려가는 죄수들마음은 어땠을까?
바이런 덕에 더 유명해진 성이라 그럴까? 영국 관광객들이 적지 않았다. 오랜 과거의 시간 속에서 끔찍했을 공간. 그러나 지금은 그저 여행지였다. 새삼 당시 죄수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마지막 뜰을 지나면 성주가 살았던 숙소와 창고들이 있다. 성주는 결국 요즘으로 치면 교도소장 역할을 겸하고 있었던 것일까?
시옹성은 단지 관광지로만 개방된 것은 아니었다. 성주가 파티를 벌였던 공간에서는 이제 콘서트가 열리는 무대로 변신하기도 한단다.
몽트뢰 시내로 돌아와서 드디어 만난 프레디 머큐리. 그는 1946년 9월 5일 세상에 와서 1991년 11월 24일 떠났다.
몽트뢰를 9월에 가야 하는 이유다. 그곳엔 이미 다녀간 팬들이 남긴 꽃과 선물이 넘쳐났다.
동상으로 만났지만 그때의 감정을 글로 표현하긴 쉽지 않다. 보헤미안 랩소디를 반복모드로 듣고 또 들어도 좋았을걸.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이 좋아한 몽트뢰에서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들과 외롭지 않게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