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달 10일 오전, 잠실주경기장 보조경기장 육상트랙이었다. 이날은 새로 부임한 LG 김기태 감독의 지휘아래 이른바 'LG 체력장' 체력 테스트가 있던 날로. 기준치에 미치지 못하는 선수는 1차 전지훈련 명단에서 제외된다는, 다소 긴장된 날 오전이었다.

 

 

그런데, 어느 한 선수...

 

 

 

김기태 감독의 속을 태우는 선수가 있었으니..

 

 

 

언뜻봐도, 몸이 무거워보이는 투수 박현준(26, 왼쪽)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날 박현준은 체력 테스트 기준치에 미치지 못했고, 결국 1차 전지훈련 명단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26세, 나이도 많지 않은 선수가 1차 체력 테스트에 탈락하다니. 그날 하루 박현준의 전지훈련 '명단 제외' 소식은 적잖은 이슈가 되기도 했다.

 

 

오전 한 9시경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같은 숙소에 묶고 있던 한 후배가 연락을 해서 "오늘 경기(28일 예정이었던 박찬호 선발등판 경기)가 우천으로 취소되는 바람에 지금 LG 훈련하는 곳에 가려는데 함께 갈건가"라는 의향을 물어온 시간 말이다.

사실 별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박현준의 경기조작 혐의 사실 여부를 떠나, 안절부절 못하며 신경이 곤두서 있던 LG 프런트의 입장을 고려해 그다지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또 하나 이유라면, 우리들로인해 자칫 훈련 분위기가 어색해지는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헌데...

 

 

 

연락해준 후배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며 수화기를 내려놓은 기자는,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사실이 사실이라면...". 다시말해, 박현준의 경기조작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어쩌면 유니폼을 입고 훈련하는 박현준의 마지막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했다. 시시각각 검찰의 소환이 임박했던 이유다. "그래, 같이 가자".

 

 

비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이시가와구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경...

 

 

 

박현준은 여느 동료들 틈에서 정상적인 투수 수비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날 불펜피칭은 없었고, 수비훈련과 러닝, 그리고 웨이트트레이닝이 전부였다. 이들은 잔류군으로, 본진은 고지로 원정을 떠난 상태였다.

 

 

정말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건데...

 

 

 

박현준에게 카메라 포커스를 맞추는 게 몹시 부담스러웠다.

 

 

왜였을까...?

 

 

 

어느 한 순간, 박현준과 눈이 마주쳤는데..

 

 

 

사실 그의 원망스런 눈빛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카메라를 향한 원망스런 눈빛과 표정이었다. 또한 이 순간,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의 표정대로라면, 경기조작 혐의가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것.

 

 

 

잠시 실내연습장 밖으로 나와 담배 한개피를 피워 물려 동행했던 후배에게 생각을 물었더니 그역시 같은 의견이었다. "헷갈리네요. 정말. 경기조작 가담을 한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것 같기도 하고...".

 

 

그런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할 수 밖에 없었던 건...

 

 

 

훈련도중 박현준은 간간히 고개를 숙이며 뭔가의 생각에 깊이 잠긴 사람처럼, 깊은 고민에 빠진 사람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이때 러닝의 강도는 실상 호흡이 매우 가쁠 정도로 심하게 빨리 뛰거나 그러지는 않았었다.

 

 

그날 저녁이었다...!

 

 

 

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는 LG의 오키나와 현지 숙소 호텔로비에서 어렵사리 박현준을 만날 수 있었다. "김성현의 체포 소식을 알고 있나"라는 질문에 "알고 있다". "여전히 혐의 사실을 부인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짤막하지만 단호히 대답했다. 최만식 기자 생각도 같았다고 한다. "박현준의 혐의 사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우리와 공통된 생각 말이다. 그 역시 "참 헷갈린다"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불과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박현준의 위치는..

 

 

 

오키나와에서, 인천공항으로 변해있었고..

 

 

이때도 역시...

 

 

 

박현준은, 하루전과 마찬가지로 혐의 사실을 부인하곤 서둘러 인천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매우 중요한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박현준이 웃은 이유는 뭘까?'. 불과 이틀도 못가 밝혀질 일부 혐의사실 인정에도 불구하고, 왜 박현준은 인천공항에서 알 수 없는 미소로 사람들을 더욱 헷갈리게 만들었을까.

 

 

 

지난 해, 한국 스포츠계를 대혼돈의 도가니에 빠지게 했던 '승부조작 파동' 프로축구의 어느 한 구단 프런트로부터 '박현준 웃음의 의미'와 관련된, 지난 해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언론을 통해 자세히 알고 있다"고 운을 뗀 그는...

 

 

 

먼저, 두 가지 경우를 들었다. "우리도 경험을 해봐서 아는데,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가 그 혐의에 대해 대처하는 벙법은 두 가지다. 첫번째는 (승부조작 가담 사실을 비롯해 어떤 문제가 생겼을 경우) 구단 프런트에게 사전에 솔직하게 말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고 끝까지 버티다가 검사 앞에가서야 실토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더라". 따라서 "박현준이 프런트에게 솔직히 그 혐의 사실을 예전에 이미 말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일단 구단 프런트에게 실토했을 경우의 수는 반반이라고 했다.

 

 

그럼 대체 "네티즌을 분노케한 '웃음의 의미'는 뭐냐?"고 물었다...

 

 

 

공항에서 옅은 웃음을 띈 이유에 대해서는 "만약 웃지 않고 침통한 표정으로 공항을 빠져나갔다면 그동안 줄곧 부인해 오던 혐의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됐을 것이다. 그럴경우, 바로 그 순간부터 '그럼 그렇지'라는 온갖 비난이 인터넷을 통해 마구 쏟아질거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박현준에겐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뜻으로. 풀어서 해석하면, 웃는 얼굴로 자신은 죄가 없는 것 처럼 꾸미려했던 게 아니라, 두고두고 창피한 모습(마치 검찰에 구속되는 듯한 굴욕스런 장면)을 기록에 남기지 않으려는 의도였다는 것. 인터넷을 떠도는 김성현(23, LG)의 검찰 구속 사진과 동영상 등을 떠올리면 된다.

그리고 그는, "그건(웃음을 띈 건) 아마도, 끝까지 믿어달라고 했던 구단 직원들과 동료들, 그리고 팬들에게 일말의 양심 같은 게 아닐까. 지난 해 우리 구단의 승부조작 가담 선수도 박현준과 마찬가지로 검찰에 소환되는 날 아침까지도 '그런 적 없다', '믿으라'며 웃고 떠났었다. 하지만 결국..."이란 끝말로 전쟁속 폐허 같았던 지난 해 프로축구 승부조작 파동의 경험담을 마무리지었다.

 

 

혹시...?

 

 

 

1차 전지훈련에서 제외됐던, 박현준의 지난 1월 그 수모는..

 

 

 

어쩌면, 한 달 여 후에 밝혀질 경기조작 파문의 '운명적 예견'은 아니었을까?

 

 

과연...

 

 

 

[사진은, 지난해 오키나와 전훈때 박현준의 투구 모습이다.]

 

마운드에 선 LG 트윈스 투수 박현준, 아니 프로야구선수 박현준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대구지검에서의 박현준 일부 혐의사실 인정 소식을 전해듣곤 "돈방석에 앉을 때가 머지않았었는데, 그 사이를 못참고. 나이도 아직..."이라며 혀를 차던, 오키나와 현지의 한 프로야구 관계자의 아쉬운 탄식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돈다. 여러모로 씁쓸할 따름이다.

 

 

글·사진 / [디스패치 줌인스포츠(오키나와)=강명호 기자] twitter.com/zoominspo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