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여·마천 일대 편의점 돌며 담배 구매후 영업정지 들먹이고 합의금 요구

현행법 '악의적인 구매자 방조'…개정안 발의됐지만 국회서 '쿨쿨'

(서울=뉴스1) 김정현 한병찬 기자 = "담배파셨죠? 이 영수증 경찰에 신고당할래요, 아니면 현금으로 40 주고 끝낼래요?"

최근 서울 송파구 거여동·마천동 일대 편의점주들이 이같은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편의점을 돌며 '미성년자 담배 판매'로 협박하며 돈을 뜯어내는 10대 청소년 무리 때문이다.

그동안 일부 미성년자들이 법을 악용해 무전취식이나 포상금을 노린 '셀프 신고'를 하는 사례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처럼 아예 협박을 통해 돈을 뜯어내는 것은 새로운 형태다. 더 대담해지고 교묘해진 셈이다.

◇거여·마천 일대 편의점 돌며 '담배 구매'…합의금 협박 중고생에 '한숨'

지난 4일 <뉴스1>이 만난 서울 송파구 관내 편의점주 및 아르바이트생들은 최근 인근 중·고등학생들이 술·담배를 구매한 뒤 협박해 합의금을 요구하는 사례들이 빈번하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지난 12월에도 5호선 거여역 인근 A편의점이 이같은 피해를 입었다고 입을 모아 지목했다.

이들의 수법은 상당히 계획적이다. 16~18살 사이의 학생들은 해당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이 바쁜 틈을 타 담배를 구매한 뒤 편의점주가 근무할 때 영수증을 들고 찾아와 '40만원을 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해 영업정지를 먹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B편의점주 C씨는 "(그 미성년자들) 요즘 여기 주변 편의점 다 오고가고 있고, 우리 가게에도 왔었다"며 "본사 직원까지 (인근에) 당한 곳이 있다고 연락이 와서 폐쇄회로(CC)TV 영상까지 공유해줬는데 정말 어리더라"고 귀띔했다.

그는 "점주 입장에서는 책임은 점주에게만 물리고, 영업정지라도 받으면 수입이 없어 타격이 엄청나니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라며 "걔네도 아는 거지, 자기는 (미성년자라) 처벌안받는다는 걸 알고 법을 악용하니까…애꿎은 점주들만 당하는 거예요"라며 한숨을 쉬었다.

근처 다른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이모씨도 피해를 입은 편의점을 이야기하며 "이쪽 동네에서만 그러는 건지 모르겠는데, 요새 어린애들 사이에서 (편의점주 담배 협박이) 유행하는 것 같다"며 "여러 곳에서 비슷한 일이 계속 나타나는 거 보면 돈 벌 방법으로 생각하고 아예 어린애들한테 시킨 사람이 있는 거 아닌지 하는 의심도 든다"고 꼬집었다.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지목당한 편의점주와도 만났지만 "우리 가게에서는 그런 일 없었고,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없다"며 답변을 피했다. 돈을 건넸는지 여부도 들을 수 없었다. 협박을 당한 피해자가 오히려 보복이나 처벌 등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인상이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송파 관내 미성년자 담배 구매와 관련해) 112에 특별히 처벌 관련 확인되는 것은 없다"고 밝혔다.

◇협박에도 침묵할 수밖에…청소년보호법·식품위생업법 여전히 '판매자'만 처벌

편의점주들은 이같은 피해가 이어지고 있지만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신고를 한다면 이들 청소년을 막을 수 있지만 '영업정지' 등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청소년보호법은 술과 담배를 유해약물로 지정하고 이를 청소년에게 판매한 업주에게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식품위생법에서도 청소년에게 주류를 제공하는 행위는 영업정지 또는 폐쇄 처분까지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구매자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는 점을 악용해 미성년자들이 편의점이나 술집을 운영하는 업주들을 골탕먹이는 사례가 10년 넘게 지속돼 자영업자들은 지속적으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한국외식업중앙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2년 사이 미성년자 주류 판매로 적발된 3339개 업소 중 구매자들이 고의로 신고한 비율이 78.4%(2619개 업소)나 된다는 통계도 있다.

이에 지난 2019년 6월 개정된 식품위생업법 75조를 통해 '신분증 위·변조나 도용으로 식품접객영업자가 청소년인 사실을 알지 못했거나, 폭행 또는 협박으로 청소년임을 확인하지 못할 경우'에 한해 행정처분을 면제하는 조항이 추가됐다.

하지만 여전히 담배 판매에는 해당되지 않는데다 휴게음식점으로 신고되지 않은 편의점 역시 해당 규정이 적용되지 않아 피해에 노출된 상황이다.

담배의 경우 지난 2020년 기획재정부의 담배사업법 시행규칙 개정으로 신분증 위·변조 또는 도용이나 폭행, 협박으로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매한 경우 영업정지 처분을 면제토록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불기소 처분이나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경우로만 한정돼 있다.

◇전문가 "공갈 범죄 성립, 부모 상대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지만…"

소년 사건을 전문적으로 담당해온 조기현 변호사(법무법인 대한중앙)는 "(이같은 청소년들의 행위는 )공갈 범죄가 성립할 수 있다"며 "공갈로 처벌을 받을 경우 친권자인 부모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문제는 공갈이 성립하더라도 형사처벌이 아닌 소년보호 처분 정도일 것이고, 손해배상 청구를 하더라도 점주들이 영업정지를 당해서 받게 되는 손실이 훨씬 클 가능성이 높아 현실적으로 신고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행법으로는 미성년자들의 이같은 행동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입법 조치를 통한 법 개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20년 12월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이 담배 및 주류를 구매하는 청소년에게 사회봉사 및 특별교육을 이수토록 책임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청소년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지만 2년이 넘도록 소관위에 계류 중이다.

이웃 일본도 국내와 상황이 비슷하다.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판매한 업주에게 50만엔(약 486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다만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미성년자흡연금지법'을 통해 만 20세 미만 미성년자의 흡연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부모 등 친권자에게도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미성년자의 흡연 자체에 더 큰 책임을 부여하고 있다. 미성년자 담배 판매로 인한 영업정지 관련 규정도 없다.

반면 미국과 영국 등 서구권 국가는 미성년자에게 술과 담배를 판매한 업주를 처벌하는 규정은 물론 구매한 미성년자에게도 책임을 묻는다. 미국은 주에 따라 다르지만 담배를 구매하거나 구매 시도, 소지하는 미성년자를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김정현 기자 (Kris@news1.kr),한병찬 기자 (bchan@news1.kr)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공=뉴스1. 해당글은 제휴매체의 기사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