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ch=이명구 기자] 28년 동안 음악을 했다. 한 우물만 판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속담과 달랐다. 음악이란 잠시 빛날 순 있지만, 항상 빛을 내기란 쉽지 않다.
'왜 밴드를 고집 했을까?' '지금 남은 것은 무엇일까?' 고민의 끝은 다시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다. 1993년 공일오비(015B) 객원보컬로 '단발머리'를 불렀던 가수 조성민의 새로운 시작이다.
"밴드 음악에 미쳐서 최선을 다해 살아봤어요. 문득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은 뭘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속적인 것들은 막상 다 무의미 했죠. 주위를 둘러 봤더니 항상 함께 해온 동료, 선후배들이 있더라고요."
조성민은 지금부터라도 그들과 함께 추억을 쌓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프렌즈 프로젝트'의 출발이었다. 한 명 한 명 연락을 했고 많은 이들이 흔쾌히 동참 의사를 밝혔다.
지난 9월 10일 ‘Friends vol.1’의 첫 번째 음원 '10살의 하루'가 공개됐다. 함께한 가수는 김형중.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집 근처 골목길에서 돌멩이 하나, 전봇대 하나만 있어도 신나게 놀았던 때를 회상했다.
"김형중과는 데뷔 때부터 친구 사이로 지냈어요. 28년 지기 친구인 셈이죠. 잊혀져 가던 추억, 다시는 오지 않을 시절에 대한 애틋함.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감성을 노래에 담았죠."
전세계 화제작 '오징어게임'이 넷플릭스에 공개된 날은 9월 17일이다. 장르도 분위기도 다르다. 다만 비슷한 시기에 어린 시절의 놀이와 추억을 다뤘다는 공통점이 있다. '오징어게임'을 보고 '10살의 하루'를 들어 본다면 어떨까?
'프렌즈 프로젝트'의 시즌 1은 총 12개로 기획 됐다. 지난 10월 8일엔 두 번째 음원 'Touch me love'가 공개됐다. 김형중에 이어 조성민과 함께한 주인공은 그룹 'Eve'의 멤버 김세헌. 'I'll Be There' '너 그럴때면' 'Lover' 등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다.
"터치 미 러브는 누군가를 그리워 했던 감정들을 다룬 곡이예요. 같은 밴드 음악인 이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형이랑 같이 불렀죠. 서로가 다른 감성으로 이야기 하는 게 특징이예요."
조성민은 앞으로 1년 간 매달 한 곡 씩 '프렌즈 프로젝트'를 선보일 계획이다. 평생의 음악 노하우를 쏟아 붓겠다는 각오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에는 가수들 뿐 아니라 그의 음악 인생과 함께한 녹음실 엔지니어, 연주가들도 동참해 의미가 더 깊다.
'프렌즈 프로젝트'의 노래들은 조성민의 음악적 변화를 보여준다. 청춘 시절의 밴드 음악과 전혀 결이 다르다. 그는 솔직하게 시간의 흐름과 세대 차이를 털어 놨다.
"공일오비나 밴드 레드 플러스 때는 자신감이 넘쳤어요. '나 보다 음악 많이 듣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 그런 마음이었죠. 나이 때문일까요. 당시엔 어떤 음악을 만들면 새롭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지금은 그런 곡을 만들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감성을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요즘 노래를 부르기 힘들어요. 안 불러져요. 그게 세대 차이라면 인정해야겠죠. 대신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요. 어쩌면 지금 아이돌들은 반대로 내 음악이 어렵지 않을까요?"
세계 음악의 주류로 성장한 케이팝에 대한 생각을 어떨까? 조성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고 너무 자랑스럽다고 했다. 성공 요인으로 IT강국의 인프라, 기획부터 음원 발매까지 과감히 실행하는 빠른 속도감 등을 꼽았다.
사실 '프렌즈 프로젝트' 역시 이런 시대 변화를 받아들인 아이템이었다. 밴드로 살아온 조성민의 인생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음악을 지속 하기 위해 따로 생계를 해결해야 했다.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드라마 '선덕여왕' 때부터 시작해서 스틸컷, 메이킹 영상 촬영 등을 했죠. 그 돈으로 음악을 만들었어요. 어쩔 땐 음악 보다 사진, 영상 촬영, 편집 일이 더 많을 때도 있었죠."
조성민은 사진이나 영상을 기술적으로 따로 배운 적이 없다. 전문적 지식 보다 음악을 해오면서 겹겹이 쌓인 감성으로 승부 했다. 또 다른 그의 음악이었던 셈이다.
아르바이트의 경험들은 '프렌즈 프로젝트'에 고스란히 녹아 들고 있다. 커버 사진, 뮤직비디오 촬영 편집 등을 모두 셀프로 해결한다. 조성민은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나누기도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유기견, 유기묘 사진을 찍어 주는 봉사를 하고 있다.
"가수로서 인생이 쉽지 않았어요. 음악을 만들려면 제작비가 필요하죠. 그래도 멈출 순 없었어요. 프렌즈 프로젝트는 이제 시즌 1 이예요. 12명과의 작업이 끝나고 나면 시즌 2를 시작해야죠. 시즌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유튜브에는 1995년 공일오비 시절 조성민이 '단발머리'를 부르는 영상이 있다. '조성민은 객원가수로서 별로 큰 주목은 받지는 못했지만 노래 만큼은 괜찮음' '지금 들어도 조타' '목소리 너무 좋네요'
댓글은 2021년 '프렌즈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감성 돋는 노래 잘 들었습니다' '갬성 충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노래 감사합니다'
시대 변화와 무관하게 조성민의 음악이 계속돼야 할 이유들 이다. 그가 만드는 음악들은 누군가에겐 계속 발견될 것이다. 프렌즈 프로젝트가 멈추지 않으려면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