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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 있는 독립운동사적지 등을 찾아다니면서 역사의 흔적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폐허로 변했거나 추모비 조차 없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머나먼 땅에서 한시도 조국을 잊은 적 없는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최근에는 공로를 인정받아 사진가로는 처음으로 국가보훈처 보훈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김동우(43)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동우 작가. /jobsN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김동우 작가는 원래 신문사 기자였다. 대학 졸업 후 2006년 전기신문 기자로 입사했다. 직장 생활 8년 차쯤 반복적인 회사 생활에 회의를 느꼈다.

“8년 간 일하면서 쉼 없이 달려오다 보니 문득 ‘지금 이렇게 사는게 행복한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났으니 바꾸지 못하고,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았으니 알 수 있는게 없어요.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현재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 보자 싶어 용기를 냈고 2012년 퇴사했습니다. 그때가 35살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해 첫번째 세계여행을 떠나다

평소 등산과 트레킹이 취미였던 그는 회사를 그만둔 후 퇴직금을 들고 무작정 세계 일주를 떠났다. 중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북남미, 아프리카까지 약 10개월 간 전세계를 누볐다.

“발길이 가는 대로 여행했어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죠. 있고 싶을 때까지 머물렀고, 떠나고 싶을 때 이동했습니다. 등산을 좋아하다 보니 세계 명산을 중심으로 다니면서 카메라에 풍경을 담았습니다. 다큐멘터리 매거진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세계 10대 지상 낙원인 토레스 델 파이네, 여행객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는 카라코람 하이웨이,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등을 여행하면서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꼈어요. 파타고니아의 세찬 바람을 맞을 땐 바람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죠. 정말 멋졌습니다.”

김 작가는 지구 한 바퀴를 돌고 재정비를 하기 위해 한국에 돌아왔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과 보고 느낀 것을 담아 책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와 ‘걷다 보니 남미였어’를 냈다. 또 수협중앙회 홍보실에 홍보 담당자로 취직도 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은 길지 않았다. 사진을 공부할수록 개인 작업을 진지하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결국 3년 만에 사표를 냈다. 2017년 카메라를 들고 두 번째 세계 일주를 떠났다.

◇인도 델리 레드 포트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다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제대로 하고 싶어 두번째 세계 여행을 계획했습니다. 인도네시아 발리를 시작으로 동남아를 거쳐 인도를 여행하던 중 생각치도 못한 장소를 마주했습니다. 인도 델리에 레드포트라는 성이 있어요. 레드포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 총사령부 주둔지로 쓰이던 곳입니다. 그곳이 한국광복군 훈련지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델리 레드 포트(좌), 델리 레드 포트의 빈 성터. /ⓒ김동우

당시 레드포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소속인 ‘인면전구공작대’와 영국군이 함께 훈련했다고 합니다. 인면전구공작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의 요청을 받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파견한 부대였어요. 신체조건은 물론이고 일본어, 영어 등에 능통한 최정예 9명으로 이뤄졌었죠. 공작대원들은 감청, 암호 해독, 문서 번역, 선무 공작(일종의 심리전으로 작전 전후 점령지 주민을 대상으로 벌이는 선전 방송)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임시정부는 참전국 지위를 얻기 위해 인도까지 광복군을 보낸 거였어요. 연합군 편에서 전쟁에 참여하고 이를 인정받는 건, 강대국들에 자주독립을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이 됐죠.

머나먼 곳에서 독립운동의 흔적을 마주하고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기분이 들었어요. 이런 역사가 있었다니 왜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흔히 독립운동의 사적지라고 하면 상하이, 만주, 미주 정도만 생각하는데 광복군이 인도까지 왔었다고 하니 놀랐어요. 교과서에서도 배우지 못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국외에 있는 독립운동사적지에 관심이 생겼어요.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나라 역사의 현장을 주제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울림을 카메라에 담아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김 작가는 그때부터 국외 독립운동사적지를 찾아다니면서 우리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2017년 4월부터 인도를 시작으로 멕시코, 쿠바, 미국, 러시아, 네덜란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중국, 일본 등 약 1년 8개월 간 세계 곳곳을 다녔다. 지금까지 찾아다닌 곳만 10개국 250여 곳에 달한다. 또 그곳에 사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수소문해 취재했다.

멕시코 살리나크루즈 해변에 서 있는 김 작가. 1905년 5월 1000여명의 한인들이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 장소다.(좌), 멕시코 메리다 애니깽. /ⓒ김동우

-멕시코, 쿠바에도 독립운동사적지가 있네요.

“대부분의 사람이 몰라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죠. 1905년 인천 제물포에서 한인 1000여명이 멕시코 이민 배에 오릅니다. 이민 브로커의 말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이었어요. 브로커는 허위 광고를 내 굶주림에 시달리던 사람들을 꼬드겼고, 이에 넘어간 한인들은 배에 탔죠. 멕시코 땅에 도착한 한인들을 반긴 건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던 멕시코 농장주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인들은 20여개 애니깽(Anniquin·용설란이라는 작물) 농장으로 흩어져 4년 간의 계약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 돼지 한 마리 값이 80전 정도였는데 한인 노동자 한 명의 몸값은 30전 정도였어요. 돼지보다 싼 몸값이었죠. 때론 농장주가 휘두르는 채찍을 맞으면서 노예와 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런 참혹한 환경에서도 조상들은 나라를 위한 독립운동을 해나갑니다. 멕시코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독립 자금을 보내고, 독립군 양성을 위해 숭무학교를 세웠어요. 학교가 있었다는 터에 지금은 큰 시장 건물이 들어서 있어요.

쿠바도 한인 디아스포라(고국을 떠난 사람들)의 땅이에요.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 1세대 300여명이 1921년 쿠바로 넘어갔었죠. 올해가 쿠바 한인 디아스포라 100주년이에요. 조상들은 쿠바에서도 독립자금 모금을 하고 독립전쟁을 위한 군사훈련까지 했습니다. 또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 소식을 듣고 쿠바에서도 광주학생독립운동 지지대회를 열어 후원금을 모금했습니다. 흔적을 짚어가다 보면 가슴이 저릴 때가 많아요. 조상들은 한시도 나라를 잊지 않고 되찾기 위해 전세계 곳곳에서 애썼어요. 애잔하고 절절한 역사를 마주할 때면 눈물이 핑 돕니다.”

메리다 대한인국민회 제니 관장. /ⓒ김동우

메리다 숭무학교 터. 지금은 큰 시장 건물이 들어섰다./ⓒ김동우

-작업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땠나요.

“사적지 한 곳 한 곳을 찾아가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독립기념관 국외 독립운동사적지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죠. 자료와 실제 위치가 달라 길을 헤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동네 주민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일일이 찾아야 했어요. 허탕치는 경우도 많았죠. 힘들어도 이겨내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어요. 용기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국군의 뿌리이자 한국 독립군 양성의 대표기지인 신흥무관학교 터는 옥수수밭으로 변했어요. 역사를 알리는 표지판 하나 없습니다. 이렇게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현장이 대부분입니다. 표지판 하나 없는 사적지, 이력 한 줄 쓰여 있지 않은 비석, 무덤조차 마련하지 못한 수많은 무명 투사들의 흔적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아 폐허로 변한 현장 앞에 서면 ‘늦어서 죄송합니다’라는 마음부터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지만, 분명 조상의 흔적이 있는 곳이에요. 어떻게든 그 흔적을 사진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중국 만주 ‘태극기 동굴’에 새겨진 태극기. /ⓒ김동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어디인가요.

“중국 만주에 ‘태극기 동굴’이라는 곳이 있어요.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다 보면 동굴 하나가 나옵니다. 동굴 벽면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어요. 또 대한독립군 4명의 이름이 함께 적혀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독립군이 이곳을 은신처로 쓰면서 새겨 놓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봐요. 100여 년 전 독립군이 직접 새겨놓은 태극기를 보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이 밖에도 김 작가는 한국 공군의 뿌리인 미국 하와이 윌로우스 한인 비행사 양성소 교육장, 미국 맨해튼 한복판에서 만세 삼창이 울려 퍼졌던 뉴욕타운 홀,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인 독립운동가 최재형 순국지 등 역사적 장소와 인물의 흔적을 카메라에 담았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작업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독립운동가 후손을 만날 때마다 현장에서 통역을 구해야 했어요. 경제적인 여유가 없으니 전문 통역가는 쓰지 못하고 현지 대학생이나 유학생을 섭외해야 했죠. 통역에 한계가 있어 더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해 답답할 때가 많았습니다.

후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모습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사진 속 후손의 모습은 일부러 흐릿하게 표현했어요. 3·1운동 이후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역사를 묘사했어요. 역사를 잊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습니다.”

김익주 후손 다빗 킴. /ⓒ김동우

임천택의 후손 마르따 임 김(좌), 안창호 막내아들 안필영. /ⓒ김동우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만남은 어땠나요.

“작업을 하면서 후손 분들을 만날 때 가장 보람을 느꼈어요. 100년 전 고향을 떠난 조상들의 흔적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죠. 우리와 똑같은 얼굴로 김치, 부침개 등 우리가 집에서 흔히 먹는 음식을 해 드세요. 뿌리를 잊지 않으려고 애쓰고 계십니다. 말이 통하는 건 아니었지만 마음으로 전해지는 감정이 많았어요. 한이 맺혀 눈물을 흘리는 분도 계셨어요. 후손의 이야기를 듣다 감정이 벅차 올라 힘들 때가 많았습니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아 마음이 쓰렸고, 감정이 요동칠 때도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대우나 처우가 너무 소홀하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이 컸습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작업하면서 감정이 울렁거릴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어떤 현장에 가면 정말 아무것도 남아있는게 없어요. 휑한 들판에 덩그러니 서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을 바라본 적도 많았죠. 왜 이렇게밖에 관리하지 못했을까 한탄스럽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다시 감정을 추스르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는데, 거기도 비슷한 상황일 때 정말 힘들었어요.”

김 작가는 이렇게 찍은 사진을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한 ‘뭉우리돌을 찾아서’라는 사진전에서 처음 공개했다. 이후 춘천, 전주, 부산 등 전국에서 사진전을 열고 사진집도 출간했다.

러시아 크라스키노에 있는 안중근 단지동맹기념비. /ⓒ김동우

독립운동가 김익주 묘소(좌), 마나티 한인 이민 80주년 기념탑. /ⓒ김동우

독립운동가가 묻힌 로즈데일 묘지(좌), 미국 뉴욕타운홀에 서 있는 김 작가. /ⓒ김동우

-‘뭉우리돌을 찾아서’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있나요.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 돌을 뜻하는 우리말이에요.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독립운동가인 김구가 쓴 ‘백범일지’에 독립운동 정신을 상징하는 단어로 나옵니다. 일본 순사가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 중인 김구에게 “지주가 전답의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구는 이 말을 듣고 “오냐,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고 답했습니다. 전세계 곳곳에서 뭉우리돌처럼 박혀 대한독립을 위해 생을 바친 사람들을 기리면서 지은 이름이에요.”

최근 이러한 이야기를 담은 책 ‘뭉우리돌의 바다’를 출간했다. /ⓒ김동우

-책 ‘뭉우리돌의 바다’를 쓴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진집 출간 이후 현장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사진집이다 보니 따로 적은 설명이 없어 아쉽다는 반응이 있었죠. 현장에서 마주한 역사, 제작 과정 등에 대해 글로 풀었습니다. 사진으로는 다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를 담았어요.

처음에는 책 쓰는 작업을 쉽게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현장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고, 후손들의 이야기가 맴돌아 감정의 소용돌이가 컸어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마음을 다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역사학자가 아니기에 버겁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 작업이 조상들에게 위안을 주고, 자부심을 더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또 많은 사람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김동우 작가. /ⓒ조병우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역사는 기록할 때 역사로 남길 수 있어요. 누군가는 전세계에 남은 민족의 흔적을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업을 할수록 멈추기가 힘들었습니다. 이젠 사명처럼 계속해야 할 것 같아요. 독립운동가들은 실패는 했어도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던 분들이에요. 그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역사를 오롯이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지 않으면 역사는 잊힙니다. 발걸음이 이어진다는 건 기억하고 있다는 의미이자 기억하겠다는 의지에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데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전세계에 1000여곳이 넘는 국외 독립운동사적지가 있다고 해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작업해나갈 예정입니다. 평생 작업이에요.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촬영은 잠시 미뤄둔 상태입니다. 지금은 부산·경남에 머물면서 독립운동 사적지를 촬영하고 있어요. 또 8월 3일부터 9월 30일까지 부산에서 전시회 ‘관심 없는 풍경:뭉우리돌을 찾아서 부산경남 편’을 진행해요. 전시를 끝까지 잘 마무리 하고 싶습니다. 지치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고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가고 싶어요.”

글 jobsN 임헌진

출처 jobsN, 김동우, 조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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