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울었어요. 잠도 못 자고 진정제를 먹어야 했고요"

"판사는 '합의를 하지 그러냐? 재판이 계속 진행되면 너한테 좋을 것이 없다'라고 했어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인 이예린(가명) 씨와 지난해 2월 6일 진행한 인터뷰의 일부의 내용입니다.

어느 날부터 직장 상사는 이예린 씨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유부남이었고, 이예린은 그에게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하루는 상사가 이 씨에게 작은 탁상 시계를 선물했습니다.

이 씨는 침실에 선물 받은 시계를 침실에 놓았는데요. 이후 시계에서 나오는 불빛이 신경 쓰여, 시계 두는 자리를 계속 옮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계의 위치를 옮길 때마다 상사가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수상함을 느낀 이 씨는 그 시계를 검색했습니다. 아주 특수한 시계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 달이 넘어서야 알았고, 그 사이 상사는 이 씨의 방을 휴대전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검색 후 상사에게 전화해서 "이건 일반 시계가 아닌데요."라고 따지자 상사는 "그거 검색하느라고 밤에 안 자고 있었던 거야?"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검색하는 모습조차 휴대폰 너머로 지켜보고 있던 것.

경찰에 신고한 이 씨는 4시간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 씨는 수사관에게 "그 남자가 봐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한 적이 있나?"라는 등의 힘든 질문을 받습니다.

법정에서 그를 더 괴롭게 한 것은 합의를 종용하는 판사의 말.

이 씨는 "어떻게 판사가 피해자에게 합의하라고 말할 수 있나. 도대체 판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나"라고 호소했습니다.

직장 상사는 결국 징역 10개월 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씨는 여전히 우울증과 불안증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 씨는 "밤마다 울었다. 잠도 못 자고 진정제를 먹어야 했다"며 "때로는 아무 일 없는데도 내 방에서 이유 없이 너무 무서울 때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휴먼라이츠워치는 16일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 사례를 추적 조사한 보고서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비동의 성적 촬영물 이용한 범죄)'를 공개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실제로 입은 여성 12명, 정부·민간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는데요. 국제인권단체가 오롯이 한국 디지털 성범죄 실태에 집중적으로 조사한 첫 보고서입니다.

IT강국이라 일컬어지는 한국. 그만큼 디지털 기술을 악용한 불법촬영물 피해 또한 어마어마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들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전반적 인식이 최첨단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진·영상 출처=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