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사료 부족한 가축 운반선 10∼20척, 통항 재개 대기

(서울=연합뉴스) 이재영 기자 = 이집트 수에즈 운하 통항이 막히면서 대기하는 배들에 실린 동물 수천 마리가 아사할 위기에 처했다.

가축을 산 채로 싣고 운하 통항이 재개되길 기다리는 배가 13척이라고 선박 운항정보 사이트 '마린트래픽'을 인용해 CNN방송이 2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러한 배가 최대 14척이라고 보도했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자체 파악한 9척에 동물보호단체가 확인한 11척을 더해 최대 20척이라고 했다.

가축을 산 채로 싣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려던 배들은 대부분 유럽에서 중동으로 가던 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블룸버그는 운하 근처에 대기하는 배 수척은 루마니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가는 배라고 설명했고,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루마니아 당국은 가축 수출선 11척이 이번 사태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양 수입국인 사우디는 루마니아에서 살아있는 양을 수입해 이슬람 방식으로 도축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이슬람식 도축방식인 '다비하'에 따라 도축된 고기만 할랄(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게 허용된 제품)로 인정한다.

문제는 대부분 배가 사료와 물 여분을 넉넉히 싣고 다니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정부기구 '애니멀 인터내셔널'의 가브리엘 파운 유럽국장은 "이틀 안에 (가축용) 물과 사료가 떨어지는 배들이 있다"라면서 "24시간 내 운하가 열리지 않으면 중대한 비극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배는 6일 치 이상 사료와 물을 가지고 있다면서 "(출발지인) 루마니아로 돌아가기로 한다면, 아직 기회가 있지만 2~6일 더 운하가 막히면 재앙이 일어난다"라고 덧붙였다.

산 가축을 배로 운송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동물복지단체 '컴패션 인 월드파밍'의 피터 스티븐슨은 배에 수천 마리 가축을 빽빽이 싣고 장기간 운송하는 방식은 가축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질병에 걸릴 위험을 높인다며 "일부 배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다가 전용돼 가축 운송에 완벽히 적합하지도 않다"라고 지적했다.

다만 가축 수출업계에선 배마다 수의사가 탑승해 해상운송이 육상운송보다 동물 사망률이 높지 않다고 주장한다.

수에즈 운하는 대형 컨테이너선 에버기븐(Ever Given)호 좌초로 닷새째 운항이 막혔다. 이집트 운하·통상서비스업체 '리스 에이전시'에 따르면 운하가 열리길 기다리는 배는 27일 현재 276대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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