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적 괴롭힘이란 특수성 가져…시스템 개선 필요

제 때 해결 못하면 결국에는 터져…그럼에도 은폐

서울=뉴스1) 박상휘 기자 = 프로배구 선수 이재영·이다영 선수로부터 시작된 학교폭력 논란이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고 있다. 두 선수로부터 시작된 학교 폭력 피해담은 스포츠계를 넘어 연예계, 사회 전반으로 퍼지는 중이다. 지금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특정인을 겨냥한 학교 폭력 폭로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쉬쉬하고 덮은 학폭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제 때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언제든지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이번 일을 계기로 학교에서 일어난 폭력에 대해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쉽게 털어놓고 관련 기관에서 사실 관계 조사를 의무화하게 하는 등 시스템 개선이 필수라는 지적이다.

◇성장기 영혼을 파괴하는 학폭…지속성이란 특수함

학교폭력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계속해서 마주칠 수밖에 없다는 지점이다

피해 사실이 드러나기 전에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눈치 속에 쉽게 말을 꺼내기 어렵고 다음날 아침 또다시 피해자와 마주쳐야 한다는 측면에서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생애주기별 학대폭력에 대한 통합적 접근과 정책 대응’ 연구보고서도 이같은 학교폭력의 특수성에 대허서 지적하고 있다.

일반폭력의 경우 우발적이나 일회성에 그치지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학교 폭력의 경우 연속적으로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폭력에 장기간 노출됨은 물론 수면위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학교 폭력은 같은 학교․학급이라는 같은 공간 내에 있는 학생들 사이에 발생하므로 사건 발생 이후에도 일정 기간 가해자, 피해자가 마주치게 된다는 점에서 다르다"며 "일반 폭력은 연속성이 없으나 학교 폭력은 학교 내에서 끊임없이 특정 학생에 대해 행해지고, 문제의식 없이 학생들 사이에 학교 내 하나의 잘못된 문화처럼 형성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학교폭력이 성장기에 벌어지는 만큼 이후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외국에서는 성장기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지적하며 유럽에서는 1980년대부터 관련 실태조사와 연구를 벌이고 있다.

보고서는 "학교폭력은 피해 청소년의 신체건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심각한 정신건강상의 문제를 초래한다"며 "피해 청소년은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고통스러워하는데,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청소년 중 42.3%는 자살을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피해는 단순히 피해 학생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학교폭력의 피해는 당사자 뿐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데 피해 학생 가족들은 학교폭력으로 인한 피해 청소년의 고통을 좀 더 일찍 알아채지 못하고 적절한 도움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학교폭력으로 자녀를 잃은 가족들은 커다란 상실감과 자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장시간 경험한다"며 "상실감과 죄책감으로 가족들이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해 직장을 그만 두거나,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차적인 피해를 경험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감추기 급급한 기성세대…혼자 고민하는 아이들

지난 2013년 발간한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조대훈 저)에서는 학교폭력이 왜 은폐되는지에 대해 주목한 지점이 있다. 기성세대가 가진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안이하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학교폭력은 피해자 스스로 괴롭힘의 사실을 감추려 하고 또래 집단 내 특유의 배타성으로 인해 학교구성원들에 의해 은폐되기 쉽다고 지적한다. 또 학교안의 폭력에 대한 관용적인 태도, 즉 학생들 간의 다툼을 폭력이 아닌 미성숙한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성장통으로 간주하는 경향성 등의 특수성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특수성은 실제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017년 서울시교육청의 S초등학교 학교폭력 사안 특별감사 자료를 살펴보면, 학교가 학생들 간에 발생한 학교폭력 사안을 관련 규정에 따라서 신속하고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고 축소하고 은폐하는 사례가 실제로 있었다.

학교폭력 사안을 축소, 은폐해 서울시교육청 감사를 받은 한 학교는 학교장이 피해학생 학부모에게 전학을 유도했고, 피해학생이 장기간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의사소견서를 제출했지만, 교감이 병원을 방문해서 피해자 진술을 받겠다고 하는 등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를 소홀히 했다.

해당 학교의 자치위원회가 2016년도에 학교폭력을 심의한 건수는 0건이었지만 학교폭력 예방법의 규정에 의해서 실시하는 학교폭력실태 조사에서는 학생들이 학교폭력을 경험했다는 응답이 다수 있었다. 당시 실태조사에서 해당 학교 학생들이 경험한 학교폭력의 피해유형은 폭행·감금 7건, 돈이나 물건을 빼앗김 5건, 강제 심부름 2건, 심한 욕설 놀림·협박 25건, 집단적·반복적 따돌림 17건, 기타 16건으로 조사돼 충격을 안겼다.

이는 학교가 학생들 간에 발생한 학교폭력에 대하여 인지하지 못하였거나 관련 규정에 따라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은 여전히 피해 사실을 혼자 고민하거나 문제가 곪고 곪아 터지기 직전에야 외부로 사실을 알린다는게 중론이다. 즉, 학교와 관련 기관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얘기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피해사실을 털어놔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가 없는 것"이라며 "해당 사실을 폭로하면 친구나 교사로부터 더 폭행을 당하거나 무시를 받고 오히려 그 제도가 더 굳어지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뢰'가 없는 학교…누구나 쉽게 털어놓을 공간이 필요하다

현재 학교폭력 피해를 입은 학생들이 피해사실을 알리는 창구는 부모와 교사로 거의 한정돼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뢰가 가지 않는 교사와 걱정을 끼칠 것을 우려하는 부모에게는 쉽고 빠르게 피해사실을 알리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서울시교육청이 지난달 21일 발표한 '2020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 후 주위에 알린 대상은 부모(50.4%)나 학교 선생님(20.7%)에 치중됐다. 친구나 선배는 8.1%, 학교 상담실 선생님에게 알렸다는 비율은 1.5%로 집계됐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이같은 문제로 학교에 상당수의 상담사와 복지사가 학교에서 근무한다. 우리나라 학교에도 상담사가 존재하지만 본인들의 교과 과정이 따로 있는 등 상담이라는 영역에 집중하기에는 힘든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시스템 개선과 확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학생들이 좀 더 쉽고 편하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공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익중 교수는 "학교 내에 교과가 없는 사회복지사나 청소년지도사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한다"며 "이같은 구조를 통해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해결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 교수는 "현재로서는 감추지 않고 누구나 쉽게 털어놓는 문화를 형성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조기에 발견하지 못한 문제들이 터져야 발견돼 학폭위와 재판을 거치며 일이 커지고 이는 다시 피해자에게 고통으로 다가오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sanghwi@news1.kr

[ⓒ 뉴스1코리아(news1.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공=뉴스1. 해당글은 제휴매체의 기사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