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 = "계속되는 물고문에 살려고 손가락을 까딱했습니다. 자백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경찰이 시키는 대로 썼습니다. 검찰과 법원에서 허위자백이라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최인철)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려 21년간 옥살이하며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지금 이대로 죽으면 딸에게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오명을 남길까 봐 이를 악물고 살았습니다."(장동익)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17일 '낙동강 변 2인조 살인사건'이 경찰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범인이 조작됐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소식을 들은 최인철(58)씨와 장동익(61)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낙동강 변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4일 낙동강 변에서 차를 타고 데이트 중이던 남녀가 괴한들에게 납치돼 여성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은 채 목숨만 겨우 건진 사건이다.

사건 발생 10개월 뒤 최씨와 장씨는 경찰에 살인 용의자로 검거돼 법원으로부터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간 복역한 끝에 2013년 모범수로 출소했다.

20년 이상 자신들이 진범이 아니라고 주장한 이들에게 국가기관이 공식적으로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은 이번 과거사위가 처음이다.

과거사위 발표 직후 재심 심문기일을 지정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하기 위해 부산고등법원을 찾은 최씨는 휴대전화에 보관된 사진 3장을 꺼냈다.

사진은 경찰이 손과 팔을 묶은 최씨 얼굴에 수건을 덮어 물고문하는 장면을 생생히 담고 있다.

최씨는 출소 뒤 치 떨리는 고문의 기억을 그림으로 남겼다.

최씨는 "경찰은 경찰서, 파출소 등으로 끌고 가 자신들이 원하는 진술을 들을 때까지 고문을 반복했다. 구둣발로 찬 상처는 범행 뒤 도주하다 넘어져 다친 상처라고 조작하기도 했다"며 "이러다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시키는 대로 진술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최씨는 "겨자를 탄 매운 물이 눈·코·입으로 들어가면서 죽을 것 같은 고통에 몇번이나 기절했는지 모른다"며 "그 지독한 경험 때문에 그때 이후 한 번도 겨자를 먹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경찰이 공무원 사칭 혐의로 나를 잡은 뒤 마약 투약 사실을 물었고, 이후에는 고문 끝에 살인범으로 만들었다"며 "장씨는 내 친구라는 이유로 붙잡혀 고문을 받고 공범이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출소 후 서울에 거주하는 장씨는 18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과거사위 발표는 당연한 결과다. 대한민국이 달라지고 있어 감사하다"며 "다만 검사와 판사가 모순투성이인 경찰 수사 기록을 제대로 봤더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감옥에서 왜 내가 이런 가혹한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몰라 정말 억울했다"며 "출소 후 나를 고문한 경찰을 찾아 죽이고 나도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울먹였다.

장씨는 "가정이 풍비박산 나고 삶도 망가졌는데 나를 고문한 경찰, 사형을 구형한 검사, 무기징역을 선고한 판사들은 교수나 변호사로 잘살고 있더라"며 "그들은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씨와 장씨는 2017년 부산고법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재판은 아직 열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번 과거사위 발표로 향후 재심 개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최씨와 장씨는 "당장 재심 결정이 나고 재판이 열려 살인자라고 잘못 판단한 판결을 바로 잡아야 한다"며 "판결이 나면 국가공권력에 의한 살인, 고문 등 중대한 인권침해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는 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이들을 고문한 경찰관에 대한 공소시효(당시 5년)는 이미 끝난 상태다.

이들의 재심신청 사건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검찰과 법원은 고문을 당했다는 최씨와 장씨의 말에 조금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고 부실한 기록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았다는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이 때문에 살인사건 진범은 30년이 다 되도록 아직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변호사 시절 변호인을 맡아 주목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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