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자마자 버려지고, 입양된 곳에서도 사랑받지 못해 파양됐습니다. 그리고 홀로 힘겹게 세상을 살아가다, 뜻밖의 병을 얻었습니다.

현재 그의 곁에는 작은 동물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동물들을 향해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가 있는데요.

15일 방송된 SBS-TV '궁금한 이야기Y'에서 다룬 일명 '지하철 토끼남'의 사연입니다. 임한태 씨(47)를 만나보겠습니다. 

지난 5월, 몇 장의 사진이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사진에는 지하철 안의 한 남성 모습이 담겼는데요.

특이한 점은, 남자의 옆에 강아지처럼 목줄을 멘 토끼가, 또 남자의 머리 위에는 새 한 마리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진속에는 토끼와 거북이를 동시에 데리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토끼를 키우는 사람들과 수의사들은 이 사진이 마냥 황당하고 웃기지만은 않다고 말합니다.

토끼는 매우 예민한 동물이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이 토끼에게는 학대에 가까운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사진 속 남자가 토끼를 학대하고, 이로 인해 사망하게 되면 또 다른 토끼로 바꾸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토끼남' 목격자들은 "익숙하게 앞서가는 토끼를 뒤따르는 남자의 모습이 마치 강아지를 산책시키듯 자연스러웠다"고 전합니다.

제보에 따르면 그가 자주 목격되는 곳은 동묘앞 역, 서울역, 청량리역 등 주로 지하철 1호선에 위치한 역사였습니다.

하지만 토끼남은 이미 거주하던 고시원에서 방을 뺀 상태였는데요. 우여곡절 끝에 대전역에서 토끼남 임한태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한태 씨의 머리에는 앵무새가 얹어져 있었습니다. 다만 데리고 다니는 토끼는 볼 수 없었죠.

이유를 묻자, "얘하고 저하고 사연이 많아서... 그래도 얘가 저 죽지 않게 할 수 있는 버팀목이거든요"라고 답합니다.

한태 씨는 그동안 자신이 지하철 토끼남이라 불리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왜 그는 그동안 토끼를 데리고 지하철을 탔을까요? 목줄에 대해선 "진짜 사랑하는 마음에서 데리고 다닌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잘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고, 괴롭힐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고시원에 폐가 될까봐 토끼는 더이상 데리고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제작진이 "왜 이렇게 동물에게 정을 주느냐"고 묻자, 한태 씨는 대답 대신 진단서를 보여 주었습니다. 

한태 씨는 HIV, 즉 면역결핍바이러스에 감염됐습니다. 몇 년 전 교통사고가 나면서 목에 유리 파편이 수혈을 받은 뒤 몸이 이상해졌는데요.

검사해보니 수혈로 인해 HIV 바이러스에 걸린 것입니다. 그 이후로 친했던 지인도 잃어버리고, 사람들에게서 내쳐지게 됐다고 합니다.

그에게 따뜻한 온기를 나눠준 게 앵무새 몽실이였습니다.

한태 씨의 과거는, 더 파란만장했습니다. 한태 씨는 이른 바 업둥이였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남의 집 앞에 버려졌고, 양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크다 중학교 때 집을 나왔다고 합니다. 이후 공장을 전전하며 힘겹게 살아왔죠.

그러던 어느날 너무 힘들어 산을 갔는데, 새 둥지가 있었습니다. 어미 새와 아기 새가 노는 걸 3일을 지켜보고, 한태 씨는 마음을 바꿨습니다.

"반성하게 되더라. 그간 무조건 양모님 잘못이라고 원망했었다. 근데 바꿔보면, 내가 더 잘했으면 내 삶이 더 바뀌지 않았을까.." (한태 씨)

때문에 그 후로는 사랑을 주는 삶을 살기로 했다는데요.

"남은 생이 있는데, 내가 사랑을 못 받았으니까. 내가 사랑을 주는 삶을 살자고 해서. 그래서 (대상으로) 사람을 선택할 수 없지 않냐. 병이 있으니까...." (한태 씨)

그래서 택한 대상이 앵무새 몽실이였습니다.

"얘 때문에 웃음 짓게 되고, 머리에 이고 산책하러 가는 게 가장 큰 행복이다. 얘는 내가 그 병 있다고 피하거나 색안경 끼고 보지 않는다." (한태 씨)

어떤 편견에 맞닥뜨리더라도 당당히 서고 싶다는 임한태 씨. 그는 제작진에게 모자이크 처리도 필요 없다고 말합니다. HIV 보균자라는 사실도 방송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병에 걸린 건 사실이고, 그건 저 자신이 이겨내야 하고... 이거 걸렸다고 하나도 부끄럽지가 않았다. 얘(몽실이) 하나로 인해 사람들이 다가오고, 즐거워하고, 사진 찍고 그러시지 않느냐. 저는 아마 그게 좋았던 것 같다.." (한태 씨)

한태 씨의 현재 상태는 어떨까요. 의사는 "혈액 내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을 만큼 관리가 잘 돼 있다"며 "일상 생활을 통해 감염 되지 않으니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습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대전역 산책을 나온 몽실이와 한태 씨. 그는 대전역 앞에서 열심히 쓰레기를 줍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일해서 살아야 하는데 세금으로 먹고 살아서 너무 죄송하다"고 합니다. 

자원봉사를 하고 싶지만, 병 이야기를 하면 역시 난감해 한다고. 한태 씨는 "기왕 이 병에 걸렸으니, 이 병에 걸려 간병인 못 구하시는 분들을 간병하고 싶다"고 작은 소망을 전했습니다.

제작진은 사실 그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걱정됐다고 합니다. 몽실이와 산책하는 그 작은 행복마저 사라질까봐요.

마지막으로 '궁금한이야기Y' 팀은 "그것이 우리의 편견이었음을 보여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사진출처=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