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ispatch=이명구기자] 1,000만 관중시대를 앞둔 한국 프로야구에서 '시구의 영광은 가문의영광'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KBS 정지원 아나운서는 지난 13일 대전구장 한화와 롯데 경기에서 이 영광을 맛봤다. 생애 최고의 순간은 곧 아쉬운 눈물로 변하기도 했다. 이유는 시구장면이 TV에 단 일초도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날 경기중계를 M본부가 했거든요. 아무래도 제가 KBS 아나운서이다 보니... 선배들이 그러게 KBS가 중계하는 경기에서 시구를 했어야 한다고 위로해 줬어요."
방송불발로 눈물까지 보였지만 '시구의 영광'은 다양하게 빛났다. 사진기자들이 포착한 멋진 시구장면이 인터넷 뉴스면을 덮었다. KBS N스포츠 '아이 러브 베이스볼'에서는 공서영 아나운서가 멋진 멘트와 함께 시구장면을 내보냈다.
"오늘 끝영상에서는 반가운 얼굴을 보실 수 있습니다. KBS N스포츠에서도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정지원 아나운서가 오늘 시구를 위해 3주 동안 정말 열심히 연습도 하고 남몰래 많이 눈물도 흘렸다고 해요.(제가 왜 눈물이 나려고 하죠?) 그라운드 가장 높은 곳에서 더 빛났던 정지원 아나운서의 환한 미소와 시구장면을 끝 장면으로 보시면서 아이러브베이스볼 마치겠습니다."
시구장면 방송불발에 대한 소원풀이를 한 셈이다. '야생야사'를 외치는 정지원 아나운서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청주KBS에서 개국이래 처음으로 야구중계

야구에 대한 애정과 인연이 남다른 것 같은데?
▷ KBS 공채 38기로 작년 8월에 입사했다. 원래 KBS N에서 1년 정도 근무했다. 스포츠는 백지상태였는데 많은 경험을 하면서 야구에 푹 빠지게 됐다. 청주KBS에서 순환근무를 하게 되면서 야구가 없어 너무 아쉬웠다.
운명인지 대전구장 보수공사로 청주에서 한달 동안 야구경기가 열렸다. 개국이래 처음으로 라디오중계까지 하게 된 것이다. '플레이볼 충북'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자료조사에서 작가 역할까지 했다. 시구의 영광도 이 프로그램 덕분이 아닐까 싶다.
원래 4월에 시구가 잡혔었다는데 시구를 해본 소감은?
▷ 4월21일 토요일, 한화-삼성 2차전의 시구자로 초대받았었다. 하필 비가 오는 바람에 경기가 취소돼서 이번에 하게 됐다. 연습할 시간은 더 얻었지만 그만큼 부담도 늘어났다. 연습을많이 해서 잘 던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상 그라운드에 올라가니 처음에 자리도 잘 못잡았다. 투수판 앞에서 던지고 싶었는데 아쉽다. 엄청 긴장했다가 견제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관중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고 공도 생각보다 잘 날아갔다.
완벽시구 비결? 안승민 기초교육, 허구연 노하우 전수

정지원 시구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 많다고 하던데?
▷ 그립 잡는 방법 등 기초적인 것은 안승민 선수가 도와줬다. 문제는 이상하게 볼이 멀리 나가질 않았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연습하던 걸 지나가다 보고는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셨다.
포수만 보면 땅볼이 된다. 발밑에 공이 떨어진 소녀시대 제시카 시구 굴욕의 원인도 그것이라고. 허 위원이 하늘을 보며 던지라고 했다. 알려준 방법대로 하니까 진짜 공이 5미터는 더 나갔다.
시구가 사람잡을 뻔 했다던데, 도대체 뭘 했길래 그런가?
▷ 밥도 안먹고 '야구 다이어트'를 했다. 주변에서 시구가 애 잡겠다고 한마디씩 하셨다. 시구연습 때 사진이 공개된 후, 허벅지가 두껍다고들 하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연습할 때 찍어둔 동영상 보면 진짜 답이 안나올 정도였다.
시간 날 때마다 투구폼을 연습했다. 옷도 뭐 입을까 고민의 연속이었다. 3주 동안 시구에 올인한듯 살았다. 그런데 친구들, 입사동기들, 가족들 모두 텔레비전 앞에 모이게 해놓고는 시구장면이 안나갔으니...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다.
우샤인 볼트를 춤추게 한 인터뷰 가장 기억에 남아

영어 잘하는 아나운서로 유명하더라. 해외파 선수 인터뷰도 직접 한다던데?
▷ 외고출신이긴 한데 실력 보다 알아듣고 말하는 감이 발달한 것 같다. 보통 외국인에게 입을 잘 못떼는데 순발력과 용기가 있는 편이다. 스포츠 아나운서는 상황을 준비할 수 있는게 아니다. 배구시즌 때 우연히 통역이 알아듣지 못한 말을 제대로 알아내면서 선수들과 영어 인터뷰를 직접 하게 됐다.
사도스키, 게리 글로버랑 통역 없이 인터뷰 하는게 장점이긴 하다. 기회가 내게 닿아서 그렇지 외국어 잘하는 아나운서는 많다. 김석류 아나운서는 일본어를 자유롭게 한다. 영어 인터뷰할 때면 중계시간이 모자라 내 인터뷰가 끊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막상 방송이나가면 행복해 하지만.
외국 선수 인터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 KBS 아나운서가 된뒤 연수원에 있을 때 2011대구세계육상대회에 발탁이 됐다. 그때 우사인 볼트도 인터뷰 했다. 결승선에 서있는 나와 인터뷰를 먼저 한뒤 기자단 인터뷰로 넘어갔다. 최초로 우승자와 인터뷰를 해서 관중들에게 전달하는 영광스러운 일을 한 셈이다.
당시 우사인 볼트에게 '이기면 무슨 음악을 듣고 싶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섹시백'(SexyBack)을 틀어달라고 했다. 우사인 볼트가 춤을 추는 장면이 나오게 된 계기다.
처음엔 야구를 책으로 배워...10권 이상 읽었다

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데 스포츠 아나운서의 매력은?
▷ 아직 배우는 단계라 부족함이 많다. 다만 프로라는 곳이 정말 냉정한데 스포츠에는 모든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승부의 세계에는 거짓이 없다. 그래서 마음 다스리는 법과겸손해지는 법을 많이 배웠다.
스포츠 선수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피땀 흘리는 노력을 한 사람들이다. 한명한명 역경 없는 사람이 없다. 선배들이 '너랑 인터뷰 하면 왜 선수들이 우냐?'고 묻고는 한다. 질문 몇마디에 우는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고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자 야구 아나운서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경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 경쟁? 일단 좋다. 서로 모니터도 할 수 있고, 보고 배울 수 있는 폭도 넓어졌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이 많아지니까 일하기도 더 편할 것이다.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게 자극이 된다. 최희, 공서영 아나운서는 가까이에서 보면 매번 예뻐진다. 너무 부럽다.
나는 야구를 책으로 배웠다. 야구에 대한 책을 10권 넘게 봤다. 특히 '김석류의 아이러브베이스볼'은 줄 쳐가면서 읽었다. 야구 아나운서의 길에서 비켜 나와 있지만, 지금 환경은 커리어를 쌓는 사람이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웃는 모습이 좋다는데...뉴스에서 예능까지 도전해 보고파

야구칼럼 '글LOVE'도 연재한다는데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 밤낮 없이 고민하다 칼럼제목을 지었다. 글을 사랑한다는 의미도 되고 야구 글러브랑 발음도 똑같고. 야구랑 인연이 잠시 멈추나 싶었는데 강명호기자의 '줌인스포츠'에 칼럼 쓸 기회가 왔다.
'야구 아는 여자가 섹시하다던가?'. 전문적인 분야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쉬운 야구, 재미있는야구를 글로 다루고 싶다. 치어리더, 2군 선수, 감독님의 고뇌 등등. 사람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 걱정이다. 이렇게 하려면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시간은 부족하고...
현재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과 앞으로 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 청주KBS에서 '뉴스7' '지금 충북은' '아름다운 충북, 아름다운 사람들'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를 매일 하는 게 처음인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한하 이글스 청주 경기가 있다는 소식을 처음 전한 것도 나다.
어떤 것을 제일 잘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웃는 모습이 기분 좋다는 평들이 많다. 열정적인 스포츠 현장도 좋고, 올림픽 같은 대형 이벤트도 좋다. 예능까지 해보고 싶으니 다방면에 도전해 봐야겠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입사시험 당시 멘트는 이랬다. '2018년 평창 올림픽 개막식 사회를 꿈꿔보는 수험번호 71번 정지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