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안나영기자] "OK, 컷"

(이형민) 감독님의 '컷' 소리가 떨어졌다. 모니터로 달려갔다. 박보영이 웃고 있었다. 그 옆에서 말을 거는 한 남자….

"아, 이게 꿈은 아니겠지?" (feat. 속마음) 

모니터를 보는 내내 신기하다. 눈 앞에 박보영이 있다. 화면 속에 박보영이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내가 있다. 박.형.식.이.있.다.

내가 주인공이다. 상대는 박보영. 대사를 주고 받는다. 꿈에서 보던 장면이다. 그런데 현실이 됐다. '힘쎈여자 도봉순'. 그래, 꿈 같은 현실이다.

지난 해 겨울, 주연 제안을 받았다. 상대역은 박보영. 우리가 아는 그 케미여신, 박.보.영.이.다.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왜? 박보영이니까. 무조건 해야하는 작품이다. 왜? 박보영이잖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평생 후회할지 모른다. 요즘 말로, '백퍼'다.

그런데 한참을 망설였다. 2가지 두려움이 몰려왔다. 만약, 케미 여신과 케미가 맞지 않는다면? 박보영도 살릴 수 없는, 최초의 배우가 되고 싶진 않았다.

주연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연기를 시작할 때, 주인공이 하고 싶었지만…, (내게는) 미지의 영역이다. 드라마를 이끌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럴 수록, 정답은 대본에 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대본을 펼쳤다. 드라마가 머리에 그려졌다. 책장을 넘기는데 자꾸만 웃음이 났다.

"(안)민혁이, 매력있네."

안면혁은 굉장히 똑똑한 아이다. 게임이 좋아서 20대에 회사를 차렸다. 카리스마가 넘친다. 그렇다고 유머 감각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사랑은 어떨까? 여자를 아는 척 한다. 함정은, 진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 바람둥이 코스프레?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에, 박보영을 생각하니 모든 게 맞아 떨어졌다. 그녀의 연기도 궁금해졌다. 이건 하고 싶다가 아니다. 꼭 해야만 하는 작품이었다.

박보영은 어떤 배우일까. 어떤 사람일까. 빨리 만나고 싶었다. 친해지고 싶었다. 그리고, 연기하고 싶었다. 그렇게 첫 촬영을 준비했다.

실제로 만난 박보영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사실, 내가 먼저 다가서려 했다. 그런데 그녀가 먼저 다가왔다. 그것도 편안하게.

박보영은 '큰' 배우였다. 특히 그 마음씨. 현장 스태프까지 신경을 썼다. 비주얼이 사랑스럽다? 알고보면, 마인드는 존경스럽다. 그래서 '뽀블리'였다.

전석호 선배도 잊지 못한다. 그의 원포인트 레슨. "더 미쳐도 된다. 하고 싶은 걸 다해". 그 때부터 몸을 쓰기 시작했다. 손을 튕기고, 팔을 들었다.

드라마는, 단체 경기였다. 흔히 사용하는 케미? 상투적인 단어가 아니었다. 제작진과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화학작용, 그 케미스트리는 분명 폭발적이었다.

"형식 씨, 한 번 해보세요. 아닌 부분은 안쓰면 되니까." (이형민 감독)

그들이 멍석을 깔아줬다. 그 위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그렇게 조금씩 나를 깼다. 동시에 절실해졌다. 더 잘하고 싶었다. 더 잘 표현하고 싶었다.

그들이 믿어주니, 나도 (내 연기를) 믿을 수 있었다. 용기가 생겼다. 자신감도 붙었다.

"첫 키스보다는 뽀뽀가 좋겠죠? (민혁은) 아끼는 마음을 해치고 싶진 않을거에요."

안민혁과 도봉순의 첫 애정씬은 이렇게 탄생했다. 나는 철저히 안민혁이 됐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박보영은 또, 도봉순의 편에서 감정을 전했다.

'도봉순'이 남긴 유산?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다. '좋아하는 것을 잘 해낼 수도 있구나'라는…. 물론, 고민이 사라진 건 아니다. 아직 보여줄 게 더 많다.

"그래서, 난 여전히 목 마르다. 전보다 더 절박해졌다."

'도봉순'이 남긴 유산2? 내 안의 감정을 다루는 법. 이제 조금 알겠다. 다음 작품에선 또 다른 감정을 보여줄 수 있을까. 내 한계를 끊임없이 깨고 싶다.

세상은 넓고, 장르는 많다. 청춘극, 느와르, 다양하다. 그래서 감히, 수식어가 없는 배우가 되길 바란다. 규정할 수 없는 연기자.

배우 박형식은 얼마나 진화할 수 있을까. 지금도 묻고 있다. 그 한계는 어디일까. 앞으로도 묻겠다. 그렇게 한 걸음 옮길 것이다. 두 걸음 나아가겠다.

<글=안나영기자, 박형식과의 인터뷰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사진=정영우기자 Dispa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