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김지호기자] 배우 남궁민은, 대체불가입니다. KBS-2TV '김과장'(극본 박재범, 연출 이재훈·최윤석)에서, 요즘말로 하.드.캐.리.중입니다. 

속사포 대사는 귀에 콕~ 박힙니다. 슬랩스틱 코미디도 세련되게 소화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사람을 울릴 줄도 압니다. 그의 말, 표정, 손짓에서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비결은, 남궁민 그 자체입니다. 연구하고, 분석하고, 노력하는 남궁민 말입니다.

'디스패치'가 남궁민이 직접 사용한 3~4회 대본을 입수했습니다. 그 안에 녹아 있는 땀과 열정을 분석했습니다.

▶ 대본이 답이다: 남궁민은 데뷔 19년차 배우입니다. 하지만 결코 자만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신인의 자세로 대본을 연구합니다.

일단 외우는 건 기본입니다. 다음으로 대사를 입에 붙입니다. 그가 잡은 캐릭터에 맞춰 말투를 고칩니다. 조사나 어미를 바꾸는 식입니다.   

그래서 남궁민의 대본은?

너덜너덜합니다.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A4지는 접히고 또 접혀 있습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외운 모양입니다.

손때도 가득 묻어 있습니다. 여기에 펜으로 줄을 긋고, 메모를 합니다. 궁금한 것은 질문 리스트에 담았습니다.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죠?

심지어, 호흡까지 표시를 합니다.

궁금한 건 따로 뽑아 모읍니다.

▶ 김과장을 만들다 : 김과장은 '삥땅'을 외치지만, 본의 아니게 '의인'이 됩니다. 엉겁결에, 어쩌다보니, 정의를 실천하는 셈이죠. 여기서 오는 괴리가 웃음 포인트입니다.

남궁민은 '김과장' 캐릭터를 유쾌하게 해석했습니다. 대본 분석에 따르면, <김성룡은 미워할 수 없는 쿨한 허세남>입니다. 특유의 '힙''스웩'을 강조합니다.

 "성룡은 쪼잔한 사람 아니야. 쿨한 허세가 있는 사람" (by 남궁민)

 "별표 하나! 아~ 어~ 같은 의성어 당분간 제외" (by 남궁민)

▶ 디테일을 잡자 : 캐릭터를 설정하면, 디테일을 잡아야 합니다. 남궁민의 대본에는 ① 말투 ② 감정 ③ 완급 등의 디테일이 가득합니다.

우선 ① 말투입니다. 김과장은 항상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사용합니다. 껄렁하다고요? 남궁민은 이런 허세를 통해 "극한 상황에서도 촐싹맞아(?) 보이는 효과"를 냈습니다.

<3회-#5>

⇒ 대본 : 김과장은 수진(전익령 분)을 우연히 구하고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장소는 병원이고요. 윤하경(남상미 분)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 해석 : 원래는 "걸을 때 마다 전두엽이 막 울려요"입니다. 남궁민은 '막'을 '너무'로 바꿉니다. 과한 엄살? 남궁민을 바로 사발면을 흡입, 행동으로 양념을 칩니다.

"전두엽이 너무 울려"

"병원밥이 너무 맛없어"

다음으로 ② 감정을 갖고 놉니다. 말투를 정했으니, 표정에 신경을 씁니다. 남궁민은 특히 '척'에 집중했습니다. 아픈 척, 불쌍한 척, 태연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말입니다.

<3회-#3>

⇒ 대본 : 다시, 병실. 성룡은 악몽에서 깨어나 "우워어! 어우 씨"라고 말합니다. 꿈에서 형사들이 총을 쏘던 장면을 떠올리며 횡설수설.

해석 : 개그 캐릭터를 강화합니다. 잉잉거리며 울고요. 표정도 한껏 찡그립니다. 얼굴을 가리며 아픈 척을 합니다. 의인의 진지함을 없애는 효과.

"똬아아아아"

"형사들이 쏴가지구요"

"대.성.통.곡."

<3회-#15>

⇒ 대본 : 김과장이 얼떨결에 의인이 됐습니다. 회사 직원들과 기념샷을 찍고요. 손가락 하트를 날립니다. 그러다 돌아서며 "아주 돌겠네, 정말"이라 말합니다.

 해석 : 남궁민은 대본에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건 싫지만(조용히 삥땅을 쳐야하니까), 의인 이미지를 이용해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래서인가요? 겉다르고 속다른 연기의 진수를 선보입니다. 예를 들어, 품 안에서 하트 꺼내기? 중간 중간 호흡을 짓누르며 억지로 참는 느낌도 만들었습니다.

"내 품에 하트있다"

"의인이 쏩니다"

"이 복잡한 마음, 뭐다?"

③ 완급 : 사실, '김과장'이 던지는 돌직구는 묵직합니다. 기업 회계 비리, 택배 문제, 재벌 갑질, 부당 해고 등을 다룹니다. 끊임없이 공감대 높은 시사 문제를 건드리죠.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유쾌한 이유요? 남궁민의 공이 큽니다. 분노를 조절합니다. 드라마가 무거워질 때, 남궁민은 다시 코믹하게 이를 넘깁니다.

<4회-#14>  

⇒ 대본 : 김과장은 박계장에 의해 밀실로 끌려갔습니다. 그럼에도 성룡은 꽤 태연합니다. "실내에서 뭔 (가죽) 장갑을 끼고 그러냐. 땀 차게"라고 투덜댔습니다.

⇒ 해석 : 취조실은 살벌합니다. 그렇다고 심각하면 안됩니다. '수사반장'이 아니니까요. 남궁민은 이 장면에서 "네~니오"라는 명품 애드리브를 탄생시킵니다. 겁에 질린 척….

"네 아니면 아니오로 답해"

"네..니요?"

<4회-#20> 

⇒ 대본 : 박재범 작가의 지문은 <텅 빈 밀실 안에 홀로 남아있는 성룡. 분노한 표정으로 소리지르며 탁자를 발로 차고 의자를 집어 던진다. 그래도 분노가 가시지 않는다>입니다.

⇒ 해석 : 남궁민의 계산은 '절제' 였습니다. 표정은 무섭게, 행동은 간결하게. 화난 표정으로 탁자만 딱 뒤집고 끝냅니다. 그렇게 '궁이코패스'와 '남규만' 오버랩을 피했습니다.

"지금은, 절제 Time"

<4회-# 40~41>

⇒ 대본 : 회장 아들 조명석(동하 분)이 경리부에서 갑질을 합니다. 자신이 함부로 쓴 법인카드를 커버해 주지 않았다는 거죠. 이에 김과장은 일부러 폭력으로 맞섭니다.

⇒ 해석 : 지금이 바로, 사이다 타임 아닌가요? 확실히 질러줍니다. "너 일루와! 내가 저새끼 팔 완전 뽑아버릴라니까! 야 이 쉐끼야~!"라고 호통칩니다.

"왔다! 사이다 타임"

"마음껏 질러주기"

여기까지가,

남궁민의 열정입니다.

어떤 배우에게 대본은, 단순한 글자일 겁니다. 또 어떤 배우에게 대본은, 외워야할 과제일 겁니다. 그러나 남궁민에게 대본은, 정답이었습니다.

결국, 대본 안에 답이 있습니다. 다만, 그 답을 찾는 과정의 문제죠. 그냥 암기해선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해체하고 합체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남궁민은 시쳇말로, 대본을 뜯어서 삼켰습니다. 모든 말투를 '김과장'화 시켰습니다. 모든 표정을 '김과장'화 시켰습니다. 모든 행동을 '김과장'화 시켰습니다.

그렇게 그는, '김과장'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