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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의 뇌절제술”…생체실험 당했던 女배우

기사입력/수정 : 2017-01-20 11:16 오전

[D컷] 정부에 의해 인권을 유린당하고, 생체실험까지 당한 여배우가 있었습니다. 바로 할리우드 여배우 프랜시스 파머(1913~1970)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이 충격적 사건에 안타까워했습니다. 록그룹 ‘너바나’는 1993년 3집 앨범을 발매하며 ‘프랜시스 파머가 시애틀에 복수할 것이다’라는 곡을 담기도 했죠.

작가 켄 케시의 명작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고요.MBC-TV ‘신기한TV 서프라이즈'(2010년 12월 19일 방송)에서 이를 소개했습니다.

프랜시스 파머는 1913년 시애틀에서 태어났습니다. 19세에 할리우드로 입성했고, 23세에 영화배우로 데뷔했습니다.

그녀는 눈부신 미모로 화제가 됐는데요. 6년 간 18편의 영화, 3편의 연극, 30편의 라디오 드라마에 출연했습니다. 대중에게 고혹적 자태의 대명사로 각인됐죠.

이어 ‘춘희’, ‘니노치카’, ‘안나 카레니나’ 등 명작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레타 가르보와 양대 산맥을 이루며 당대 최고의 여배우로 인정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비극이 닥칩니다. 1942년, 프랜시스 파머가 남편과 이혼한 후 우울증을 앓게 된 겁니다. 때로 그녀는 각성제에 중독돼 난폭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파머는 촬영장에서 감독과 말다툼을 벌입니다. 그러다가 잉크병을 던져서 깨 버렸죠.

그녀는 체포돼 정신 감정을 받았습니다. 당시 의사는 “파머가 우울증 및 치매 전조증상이 있다. 각성제와 암페타민 중독 증상도 확인했다”는 소견을 냅니다.

프랜시스는 활동을 중단하게 됐고요. 그렇게 그녀는 대중에게서 잊혀지나 했습니다.

그러나 7년 뒤인 1949년, 언론에 프랜시스의 기사가 대서특필됩니다. “저명한 의사 월터 프리맨이 프랜시스 파머를 부활시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확인한 프랜시스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그녀는 완전한 폐인이 돼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다시, 7년 전입니다. 프랜시스는 평소 정치적, 사회적 신념을 적극 표현하기로 이름난 배우였습니다. 정부를 자주 비판했죠.

이에 미국 정부는 기회를 포착, 촬영장 난동 사건을 빌미로 그녀를 체포해 간 겁니다.

이어 뇌신경의학자인 월터 프리맨에게 감호 치료를 하도록 부추겼고요. 월터 프리맨은 프랜시스를 자신의 연구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당시 정신의학계는 경쟁적으로 성과를 내기 바빴습니다. 풀턴 박사는 “침팬지 뇌의 전두엽을 절제하면 흥분성이 없어진다”는 논문을 냈습니다.

모니츠 박사는 정신병 환자의 전두엽과 뇌간 연결 부위에 알코올을 주입해서 파괴하는 수술로 노벨상을 수상하죠.

월터도 이런 분위기에서 성과를 내려 노력합니다. 월터는 프랜시스를 강제로 워싱턴 주립정신병원으로 옮겼고, 알 수 없는 치료를 시작합니다.

프랜시스의 반항적이고 거친 성격을 고친다는 명목으로, 전기 충격요법을 시술합니다.

강력한 신경안정제를 투여하기도 했죠. 부작용으로 환각, 망상, 정신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약물들을 프랜시스에게 주사했습니다.

심지어 ‘하이드로테라피 치료’라는 요법도 시행했습니다. 이는 사람을 발가벗기고, 6~8시간 동안 얼음 욕조에 가두는 무자비한 시술입니다.

프랜시스가 전신이 찢어지는 고통에 실신하자, 월터 프리맨은 뇌 절제술을 시행했습니다.

당시 뇌 절제술이란, 얼음을 깨는 송곳을 안구 위로 찔러 넣어 뇌에 충격을 가하는 엽기적인 수술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프랜시스는 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프랜시스 파머만 이 수술의 대상이 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미국에선 4만 명 이상이 월터 프리맨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 가운데는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여동생 로즈마리도 있었고요. ‘뜨거운 양철지붕의 고양이’, ‘유리동물원’을 쓴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즈의 여동생도 포함됐습니다.

이들 역시 모두 폐인이 됐습니다.

프랜시스는 병원에 수용된 지 1년 만에 어렵게 도망쳐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기자들 눈에 띄게 되자, 월터 프리맨은 다시 계략을 꾸밉니다.

이에 프랜시스 파머는 억지로 병원에 재감금됐고, 5년 이상을 철저히 희생당했습니다.

1962년, 소설가 켄 케시가 이런 사실을 모티브로 해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발간했습니다.

이 책이 퓰리처상을 받자, 대중은 실화를 토대로 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경악했습니다. 그리고 1967년, 드디어 월터 프리맨의 수술법은 금지됐습니다.

그 후 3년 뒤, 어렵게 재기를 준비하던 프랜시스 파머는 57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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