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이명구 기자] 이탈리아 피렌체 두오모 성당 건너편, 셔터문이 닫힌 가게 앞 길거리.

바이올린과 기타 연주자 속에 가방을 맨 반바지 차림의 말쑥한 동양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서 있다.

박자를 맞추는가 싶더니 곧 환상적인 즉흥연주가 시작된다. 곡 이름은 한국에선 '고엽' '낙엽'으로 잘 알려진 '어텀 리브스'(Autumn Leaves).

이 영상은 유튜브에 공개돼 현재 530만 조회수를 돌파했다. 전세계에 음악의 감동을 전해준 콘트라베이스 연주의 주인공은 한국인 최준혁 씨다.

지난 4일 일산 현대백화점 토파즈홀에서는 재즈밴드 '굿팰리스'의 공연이 있었다. 최 씨는 그 자리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고 있었다.

연주영상 보기 https://youtu.be/7t3xBqAWLaU

▷ 유튜브 연주 영상은 어떻게 찍게 됐나요?

<작년 9월 신혼여행 중이었어요. 평생에 한번 가는거라 좀 무리를 했죠. 러시아 쪽에서 시작해서 그리스, 로마, 피렌체 등을 거쳐 파리에서 돌아오는 여정이었죠.

영상을 찍은건 피렌체였어요. 여행 중반이라 피곤하고 서로 예민해져서 싸운 상태였죠. 결국 각자 알아서 돌아다니자고 했어요.

힘없이 가죽시장을 보고 있는데 아내가 두오모 성당 앞에서 연락을 했어요. '여기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할아버지가 있어! 콘트라베이스도 있어!'

그 한마디에 화해가 됐죠. 처음엔 연주를 같이 해볼 생각도 못했어요. 구경을 하다가 '나도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라고 말하니까 바이올린 연주하던 할아버지가 함께 해보자고 했어요.>

재즈는 즉흥연주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 씨는 재즈라는 언어를 알고 있으면 어디가서도 연주를 할 수 있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서로 자기가 맡은 연주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즉흥연주를 '잼'(Jam)이라고 부른단다.

▷ 연주곡으로 '어텀 리브스'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그 분들이 아는 곡이 있고 내가 아는 곡이 있이 있을거예요. 아무래도 사람들이나 연주자들이 가장 많이 아는 곡을 하는게 낫겠다 싶었죠.

피렌체 영상 덕분에 '어텀 리브스'를 유튜브에서 치면 제가 제일 먼저 나와요. 너무 신기하고 고마운 일이죠.>

'어텀 리브스'는 널리 알려진 프랑스의 걸작 샹송 'Les Feuilles Mortes'가 원곡이라고 한다. 헝가리 태생의 피아니스트 조셉 코스마가 1945년에 초연된 가사를 붙인 것이란다. 1946년의 프랑스 영화 '밤의 문'에서 주연 이브 몽땅이 처음 불렀다고 한다. (이야기 팝송 여행 & 이야기 샹송칸초네 여행)

▷ 영상이 화질도 그렇고 음질이 너무 좋던데 뭘로 찍은건가요?

<다들 물어봐요. 이거 뭘로 찍었냐고? 음질이 왜 이렇게 좋냐고? 영상은 아내가 휴대폰으로 찍은거예요.

정확히 삼성 갤럭시S7 엣지로 찍었어요. 휴대폰 홍보해 주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얘기를 많이 하게 되네요.>

피렌체 영상을 업로드 한건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였다고 한다. 처음엔 동영상 조회수가 5~10회 밖에 안됐다. 많아봐야 100 정도였다. 어느 순간 하루 500이 되고 1,000회가 넘었다.

당시 최 씨는 어디서 영상을 보는지 잘 알지 못했다. 티핑포인트(마치 전염되듯이 폭발적으로 번지는 순간)는 어디였을까? 미국 소셜뉴스 사이트 '레딧'(Reddit)에 공유되면서부터다. 여기 랭킹에 오르면서 피렌체 콘트라베이스 연주 영상의 조회수는 폭발했다.

▷ 음악은 언제부터 했나요?

<대학교에서 재즈를 전공했어요. 원래 기타를 했는데 나름 블루오션을 찾기위해 콘트라베이스로 바꿨죠.

대학졸업 후부터 전문연주자로 살아온게 벌써 8년쯤 되네요. '굿펠리스'라는 재즈밴드에서도 활동하고 있어요.>

4인조 재즈밴드 '굿펠리스'의 이름엔 재미난 사연이 있다. 최 씨는 비브라폰을 연주하는 친구에게 밴드이름을 '굿펠라스'(Goodfellas, 좋은친구들 이란 의미로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유명 영화 제목이기도 함)로 하자고 전달했다고 한다.

문제는 처음 활동할 때 한글표기를 '굿펠리스'로 홍보를 했다는 것이다. 이후 아예 스펠링도 한글표기에 맞게 바꿨단다. 영문으로 아무 뜻도 없는 팀이름을 갖게 된 이유다.

▷ 재즈밴드에서 콘트라베이스의 역할은 뭔가요?

<콘트라베이스는 좀 중간 단계에 있는 기본이 되는 악기예요. 예를 들어 드럼은 리듬만 담당하죠. 음을 낼 순 없어요.

피아노나 보컬은 멜로디를 담당하죠. 베이스는 그 사이에서 한번에 네번씩 음악에 맞는 리듬을 치면서 음도 같이 쳐주죠.

중간에서 완충작용을 하는 셈인데요. 주로 서포트를 하는 악기라고 할 수 있어요.>

재즈는 보통 솔로는 피아노로 한단다. 둘이면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 혹은 기타와 콘트라베이스. 셋이면 피아노, 드럼, 콘트라베이스, 넷이면 피아노, 드럼, 콘트라베이스, 보컬 식으로 밴드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재즈밴드를 구성한다면 콘트라베이스는 필수인 셈이다. 알다시피 콘트라베이스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다. 피렌체 연주 영상에서 오해가 있다면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여행을 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그 콘트라베이스는 현지 밴드의 악기 였다고 한다. 최 씨가 즉흥연주를 할 수 있도록 연주자가 악기를 기꺼이 내준 것이다.

▷ 피렌체 연주 영상이 화제가 된 결정적 이유는 뭘까요?

<제 연주도 연주지만 바이올린을 연주한 할아버지의 음악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재즈밴드에 바이올린은 흔하지 않아요.

아마도 그 밴드는 여기저기를 떠도는 집시밴드여서 그럴거예요. 이동하면서 연주를 해야 하는데 피아노나 드럼을 갖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그 역할을 바이올린이 담당하는 것이죠.

즉흥연주는 절대 짜고 할 수 없잖아요. 음악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함께 좋은 연주를 들려준게 감동을 준 것 같아요.>

▷ 조회수가 500만을 훌쩍 넘었고 계속 늘고 있는데 소감은?

<매일 신기해요. 내가 그런 영상 속 주인공이 됐다는게 지금도 잘 믿겨지지 않아요. 중국에서는 방송에서도 소개가 됐다고 지인이 사진을 찍어 보내줬어요. 그땐 하루에 조회수가 10만씩 늘었어요.

조회수가 올라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돈 많이 벌었냐고 물어봐요. 아마 200만원 정도 들어온거 같아요. 누군가 만약 해외계정이었으면 더 큰 수익을 얻었을거라 하더라고요.>

피렌체 연주 영상은 지금도 해외의 반응이 더 뜨겁다. 국내의 관심 역시 해외에 널리 알려지면서 더 커졌다.

최 씨는 처음에 홍콩이나 중국 사람으로 오해 받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외모가 살짝 이국적이기도 하다.

▷ 한국에서 재즈 연주자로 산다는 것?

<결코 쉽지 않죠. 전 운이 좋은 편예요. 무슨 일이든 그렇지만 연주료는 갈수록 낮아지고 싼 사람만 쓰려고 하죠. 그래서 더 어려워지죠.

다행히 전 좋은 밴드와 열심히 활동하고 있어요. 음악을 하면서 사실 결혼은 상상도 못했어요. 음악을 하는 순간 결혼은 나랑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열심히 살다 보니까 결혼도 현실이 됐어요.>

피렌체 연주 영상 같은 즉흥연주를 또 한번 볼 수 있을까? 최 씨는 당분간은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의 아내는 임신 중이다. 내년 2월 그는 아빠가 된다. 언제든 때가 오면 다시 짐을 꾸리고 떠나 여행 중 만난 밴드와 멋진 즉흥연주를 꿈꾼다.

<삶이 크게 변하거나 달라진 건 없어요. 똑같이 연주하면서 살아가고 있죠. 앞으론 아이를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연주해야겠죠. 좋은 음악을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게 무엇보다 가장 행복해요.>

연주영상 보기 https://youtu.be/7t3xBqAWL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