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서보현·김지호기자] 1392년 4월 4일. 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바로 이 시조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100년까지 누리리라."    

이방원은 '하여가'로 정몽주를 회유했다. 고려를 버리고 새 나라를 만들자는 의미였다. 정몽주는 '단심가'로 답했다. 그는 고려 마지막 충신이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그리고 달이 드리운 늦은 밤. 선죽교는 정몽주의 피로 물들었다. 그것이 조선의 시작이었고, '킬방원'의 출발이었다. 또 정몽주의 최후였다.

일명 선죽교 사건이다. 국사책에 중요하게 다뤄지고, 수 많은 사극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사극은 기록의 변주다. 활자로 굳어진 역사에 작가의 상상력을 불어 넣기 때문.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건의 경우는, 상상력이 재미의 관건일 정도다.

그럼 하여가와 단심가는 어떻게 변주돼 왔을까. 선죽교 사건을 다룬 3편의 사극을 비교했다. '용의 눈물', '정도전', 그리고 '육룡이 나르샤'다.

안방극장에서 재현된 하여가와 단심가. 가상의 대화 'd-톡스'로 풀었다.

◆ 하여가 vs 단심가, 역사는 어땠나?

처음부터 이방원과 정몽주가 대립한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같은 친명파였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지지했고, 고려를 개혁하고자 했다.

그러나 개혁의 수위에서 갈렸다. 이방원은 아예 새 나라를 만드려 했다. 그게 바로 역성혁명이다. 반면 정몽주는 개혁도 고려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쪽이었다.

벌어진 입장차로 갈등은 커졌다. 이방원은 이성계의 생일인 1389년 10월 11일 정몽주를 만났다. 하여가를 읊으며 회유했지만 정몽주는 단심가로 거절했다.

결국 이방원은 조영규를 보내 정몽주를 습격했다. 선죽교에서다. 일설에 따르면, 정몽주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감하고 말을 거꾸로 탔다고도 한다.

◆ 용의 눈물 : 역사 그대로의, 눈물

선죽교 사건. 있는 그대로도 드라마틱하다. 시조를 통해 서로의 의사를 확인했던 고려 정치의 품격, 그리고 피로 정적을 제거하는 잔혹성까지.

정통사극 KBS-1TV '용의 눈물'(1996)은 이에 충실했다. 이방원(유동근 분)과 정몽주(정승현 분)는 역사 그대로 시조를 직접 읊었다.

야사도 그대로 반영했다. 정몽주는 야사대로 말을 거꾸로 타고 귀가했다. 별다른 장치는 없었지만 충분히 극적인 장면이었다.

인물도 역사대로 표현했다. 이방원은 '킬방원'이라는 별명답게 카리스마 넘치게 그려졌다. 정몽주는 충신 이미지에 걸맞게 절개 있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 정도전 : 하여가·단심가, 그 변주

'용의 눈물' 그 후, 2014년. 선죽교 사건은 다시 재조명됐다. 명품사극 KBS-1TV '정도전'을 통해서다. '정도전'이 그린 선죽교 사건은 '용의 눈물'과는 또 달랐다.

하여가와 단심가는 서찰과 내레이션으로 그려졌다. 또 인상적인 것은 정몽주(임호 분)가 그 2개를 모두 소화했다는 것.

정몽주는 이방원(안재모 분)을 마주한채 하여가를 읊었다. 그리고 하여가가 적힌 서찰을 팽개쳤다. 단심가는 정몽주의 최후 때 내레이션으로 흘러 나왔다.

한층 처절했다. 여기에 정몽주의 최후의 순간, 이성계(유동근 분)가 단심가를 읽는 장면을 교차편집했다. 이성계의 오열과 함께 정몽주는 눈을 감았다.

◆ 육룡이 나르샤 : 상상력이, 나르샤

그리고 지난 2일. 또 한 번의 선죽교 사건이 안방극장을 물들였다. SBS-TV '육룡이 나르샤'다. 팩션 사극인만큼 작가의 상상력이 한층 발휘된 것이 특징이다.

'육룡'의 하여가와 단심가는 시조도, 서찰도 아니었다. 오직 대사였다. 이방원(유아인 분)과 정몽주(김의성 분)가 서로 주고 받는 대사로 역사를 녹여냈다.

참신했다. 딱딱한 문어체가 아닌 대사로 나오다보니 전달력도 좋았다. 국사책과 정통사극에서 보고 들은 것과는 다른, 신선한 느낌이었다.

대사로 표현한 만큼, 인물들의 감정도 잘 살았다. 이방원은 격정적이었다. 애끓는 목소리로 하여가를 소리쳤다. 반면 정몽주는 담담하게 단심가로 받아쳤다.

또 하나 돋보이는 것은 조영규(민성욱 분)의 심리. 정몽주를 살해한 후 혼란스러움을 보여줬다. 이전의 사극에서는 주목하지 않은 감정선이었다.

역시, 김영현과 박상연이었다. 이렇게 '육룡'은 작가의 역량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작가의 상상력에 따라 드라마가, 또 사극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줬다.